잠에서 깨고 간밤에 도착한 메시지를 하나 읽는 것만으로 나의 우울은 말끔히 사라졌다. 지난밤의 악몽을 끊어내는 것은 손쉬운 일이 되어 있었고 그것은 그녀와의 관계로부터 가능해진 것이었다. 안락한 의자에 몸을 뉘이어 쉬는 꿈을 꾸곤 했었다. 영영 가질 수 없을 것 같았으나 어느새 눈앞에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때때로 시간은 버겁지만은 않게 느껴졌고 흐름에 따라 실려가는 나날들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은 이렇게 지속되고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이상 쌓여가는 글들은 없었고 정리되지 못한 사진도 없었다. 나날은 이어지고 관계는 내밀해졌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날이 있었다. 글은 퍼붓거나 엎어버리기를 반복할 뿐 쓰여지지 않았다. 지금의 글 또한 얼마간 멈춘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다. 색다른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기억으로부터 연유한 것이었다. 그때 글을 쓰며 느꼈던 감정을 또한번 느껴보고 싶고 그때 노래 부르며 느꼈던 감정을 또한번 느껴보고 싶은 것이었다. 모든 순간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삶은 많은 부분 변화했고 일상의 감정들은 더이상 예전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때때로 정말로 안락한 의자에 몸을 뉘이게 된 것이다.
여러가지 가설을 세워봤다. 사고력과 감수성 따위가 길러지고 발현되었던 환경들. 그것을 또다시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동일한 환경이 주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내게 그러한 환경은 억압과 소외, 침식에 가까운 것들이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만 나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왜 위태롭고 우울한 순간에 쓰인 글들이 더욱 아름다우며 그러한 순간에 이르러서야 감각들은 깨어나게 되는 것일까? 안락의 토대위에서는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것일까? 모두가 자신의 부모와 태어난 국가를 받아들이기에 역사가 지속되는 것처럼 불가역한 시절의 한 때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나 자신을 이어가는 방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