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고3의 기억은 공부를 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야간자율학습실의 피아노를 쳤던 기억이 유일하나 그마저도 고2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공부말고 다른 것은 할 생각이 없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그런데 어쩌다 학기초에 반장이 되었고,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성적 순인지 반장 경력 유무에 의해서인지 박수와 함께 등 떠밀듯 반장이 되었다. 생각대로 움직이던 나는 애초에 생각했던대로 내 공부밖에 하지 않았다. 자습 시간에 가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곤 했으나 내가 방해를 받지 않는 선이면 상관없었다. 5월이 생일인 나는 당시 한창 편지에 꽂혀있었다. 예전에 친했던 아이들로부터 받았던 편지들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반 아이들에게 곧 내 생일이 다가오니 편지를 쓰라고 했다. 생일 당일날까지도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편지를 받아냈다. 버티고는 있었지만 너무 힘든 시간이었기에 그들의 편지를 읽으며 조금이라도 힘을 내볼 요량이었다. 아마도 생일날 밤 모두가 돌아간 야간자율학습실에서 그 편지들을 읽었고 너무나도 귀여운 글들에 한참을 웃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 편지들을 잊었다. 수능이 끝나고 수시로 인해 졸업여행마저 못가게 되었다. 결과들은 모두 기대에 못 미쳤고 해방감은 있었으나 머리는 복잡했다. 아마도 그때쯤 그 편지들이 생각나 다시 꺼내보았다. 마치 처음 보는듯한 글들이 많았다. 걔중엔 '……그리고 시간이 있다면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서로 도와가며 같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자',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 나도 요즘 많이 힘드네', ……앞으로도 반장 잘 부탁해'와 같은 아이들의 얘기가 많이 적혀있었다. 처음보는 글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기억하는 글들은 내게 힘이 됐던, 그 순간 나를 웃게 했던 글들이 전부였다. 조금이라도 부담이 생기는 글들은 읽는 순간 외면한 듯 했다. 실제로 고3때 가장 많이 받았던 스트레스가 공부하고 있는 도중 문제를 가지고 와 다짜고짜 물어보거나 내가 풀고 있는 문제지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거나,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인강을 듣고 진도는 어디를 나가고 있는지와 같은 것들을 물어보는 순간이었다. 방해받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고 나중에는 정규수업시간을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가버려 혼자 공부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내겐 정말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그 아이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철저히 외면했다. 내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방해되는 모든걸 보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 반장이었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개인적으로 행동했다. 다시금 편지를 읽은 후로 나는 죄책감에 휩싸여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정말 쓰레기같은 짓을 했구나란 생각에 너무나도 부끄럽고 얼굴이 붉어졌다. 내게 제대로 된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켜버렸던 선생님에게도 화가 났지만 그 직함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한 채 아무것도 하지않은 자신에게 더 짜증이 났다. 8년이 되는 지금에도 죄책감은 여전하다. 그 죄책감에 지금까지도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으려 발악을 하듯 도망을 다닌다. 제대로 못할 것이란 불안감보다도 한없이 차가워지는 모습이 또다시 나올까 두려운 마음이 크다. 당시의 내 모습은 정말 치를 떨듯이 싫어 버리고만 싶은 것이다. 어젯밤 술을 마시며 잠깐 학생회에 관한 얘기가 나와 다시금 떠올리게 된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