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면 악몽이 떠오른다. 오늘로 일주일 된 2학기 실기시험의 기억이다. 지난 향상음악회의 부족함을 만회해보려 더욱 신경을 썼다. 그러나 결과는 되려 그를 압도하는 악몽으로 남았다. 밝은 빛, 수차례 휘저은 손동작, 불안하고 통제할 수 없는 소리들. 시험이 끝나면 이번 학기를 끝으로 학교를 떠나시는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인삿말을 건넬 생각이었다. 그러나 감히 그럴 수 없을 정도의 부끄러움만이 남았다. 이맘때면 시험이 끝났다는 소화감에 잠시나마 뿌듯함과 개운함을 느꼈겠으나 남은건 당혹스러움과 회의적 생각이 전부였다. 한 산문집의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떨어진 구슬의 끝을 보지 못하면 우린 영영 그 구슬을 주울 수 없다." 지난 한 학기는 떨어진 구슬의 끝을 찾기 위해 끝없이 헤매던 시간과도 같았다. 어딘가 놓쳐버린 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2015년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며 몇가지의 변화는 있었다. 먼저 반주자를 새로이 구해야만 했다. 돌이켜보면 이제껏 반주자를 구하기는 했으나 선택했던 적은 없었다. 입시는 선생님께서 데려오신 반주자와, 입학 후에는 우연히 만난 반주자와 함께하게 되었다. 대학 입학 후 첫 OT의 조별 모임에서는 한 선배가 '반주자 필요한 사람!!'을 외쳤고 난 후에 그 선배에게 반주를 맡기게 되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동기들은 모두 시간이 맞지 않은 까닭이기도 했다. 그 선배는 곧 중퇴를 하고 유학을 가는 바람에 나와는 1학년 1학기, 한 학기만을 함께 할 수 있었다. 함께하는 동안 반주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를 다녔다면 계속 반주를 부탁했겠지만 그러지 못해 새로운 반주자의 소개를 부탁했다.
새로 소개받은 반주자는 4학년의 한 선배였다. 역시나 반주와 반주자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고 성격도 좋아보였기에 함께 하기로 했다. 반주자의 소개를 부탁하며 반수 반주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가능하다고 했기에 더욱이 지체 없이 결정했다. 이전 반주를 맞출 때처럼 여전히 별다른 생각없이 집중해서 노래를 할 뿐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함께 입시준비를 하며 사이가 가까워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 반주자와는 레슨과 반주 맞추는 시간을 제하고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입시 때의 반주자 선생님과의 관계가 꼭 그랬기에 원래 그런줄로만 알았다. 다른 아이들이 반주를 맞춘 후 함께 밥을 먹는다거나 친하게 지낸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무사히 입시도 마치고 또다시 1학년 2학기, 한 학기가 지나게 되었다.
이번 반주자 역시도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졸업은 하였으나 다행히 한 학기는 한국에 더 머물 예정이었기에 2학년 1학기 또한 함께할 수 있었다. 반주자와는 어느새 가까운 친구가 되어 있었다. 동기들과는 5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데 반해 반주자와는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학교 안에 또래 친구가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성격이 굉장히 좋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래서 반주를 계속 해보는건 어떻느냐고, 넌 반주자를 굉장히 잘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나는 입학한 후로 피아노로부터 굉장히 정직한 악기라는 느낌을 받아 그것에 반해 노래하는 시간을 제하고는 거의 전부의 시간을 피아노 치는 데에 할애했다. 그러다보니 1년 반쯤 지났을 때에는 웬만한 성악 반주곡은 연습만 하면 원하는 템포로 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노래를 부를 때 점점 반주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많이 쳐 본 곡에 대해서는 반주자가 지금 어떤 식으로 반주를 치고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반주가 들리기 시작하자 반주자의 존재는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의 반주자가 굉장히 잘해주고 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향상음악회와 실기까지 때로는 조금 의지할 때도 있을 만큼 만족스러운 반주를 해주었다.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아쉽게도 반주자는 곧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다음 반주자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몇번이나 함께 얘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괜찮은 사람 없냐고 소개를 부탁했는데, 나중에는 생각이 바껴 동기들이나 1학년 후배들에게 부탁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다른 반주자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이제 어떤 반주가 좋은 반주인지 스스로 판단도 가능하게 되었기에 어떻게 보면 하나의 시험을 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동안 반주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누가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반주자를 정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하나의 원칙을 정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음악을 계속하려는 사람에게 맡기자는 것이었다. 음악교육과라는 과의 특성상 생각보다 음악을 계속하려는 사람은 적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남으면 연습실로 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만나게 된 사람들은 음악을 계속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은 너무도 큰 차이이기도 했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였으면 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그제서야 지금까지 굉장히 운좋게 좋은 반주자들을 만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몇몇 사람들을 마음에 두기 시작했고 우연히 한 술자리와 맞물리게 되어 한 후배에게 반주를 부탁하게 되었다. 2학년 1학기 여름방학부터 함께하게 되었다.
방학이 끝날 무렵부터 반주를 맞춰보기 시작했다. 2학년 2학기의 향상음악회와 실기곡의 후보들을 준비했다. 그런데 새로운 반주자가 나를 굉장히 어려워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앞선 반주자들보다 나이차도 많이 나고 게다가 후배이기까지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나보다 생각했다. 반주를 끝마치고 몇번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 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워하는 듯 해 몇 번 물어보다 그만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개강을 하고 2015년 2학기 향상음악회를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개강 후 몇 주 지나지 않아 건넸던 <Meine Liebe ist grun>이란 곡의 반주 연습이 되어있지 않았다. 반주자는 미안해 했고 다음번 레슨전에 연습해서 들어오겠다고 했다.
이 학교의 향상음악회는 매주 수요일에 열린다. 그리고 이번학기 나의 레슨 요일은 화요일이었다. 이번 레슨 다음날이 반주자의 향상음악회였기에 레슨에 들어와도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혹시나 너무 부담되면 이번에는 반주 없이 혼자 들어가겠다고 했다. 반주자는 그러면 이번에는 좀 쉬고 주말에 따로 맞춰보자고 했다. 화요일 레슨에서는 <Meine Liebe ist grun>을 반주없이 선생님과 함께 연습했고 다음 시간에 반주를 맞춰보며 향상곡으로 할 지 말 지 결정하기로 했다. 다음날 반주자의 향상음악회가 끝이 나고 주말이 되어 반주를 맞추기 위해 만났다. 약속한 시간 1시간 전쯤 도착했는데 반주자도 와 있어 가볍게 인사를 했다. 반주자는 다른 한 선배와 얘길 나누고 있었다. 반주를 맞추기로 한 시간까지 여느때와 다름없이 목을 풀고 발성연습을 했고 마지막으로 노래를 혼자 불러보았다.
시간이 되어 반주자와 만났다. 반주자가 내게 처음으로 건넨 말은 반주 연습을 하려 했는데 선배가 들어와 꼼짝없이 한 시간동안 얘길 나눴다는 것이다. 연습을 해야하니 나가달라고 후배 입장에서 말할 수도 없어 곤란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응, 그랬구나라는 말과 함께 길게 얘기하지 않고 바로 반주를 맞춰보았다. 지난주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른 것보다도 내가 원하는 템포를 따라오지 못했다. 함께 반주를 맞추는 시간만큼이라도 연습이 되겠지란 생각으로 그냥 반주를 맞췄다. 반주는 아직 손에 익어 있지 않았지만 더이상 이 곡에서 지체할 수 없어 곡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들과 원하는 템포를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다음 레슨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Meine Liebe ist grun>을 반주와 함께 불러보고 괜찮으면 향상 곡으로 정할 계획이었다. 선생님께서 그 곡을 불러보라고 하셨다.
지난 시간 선생님과 연습했던 템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반주자는 여전히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여전히 악보가 손에 익어 있지 않았다. 따라오지 못하는 박자와 주춤하는 부분들로 인해 호흡과 노래 또한 무너졌다.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반주자는 선생님께 죄송하다며 더 연습을 해오겠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그 곡은 시작과 함께 한 번 불러보고 더이상 레슨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반주 때문에 곡의 레슨을 그만두게 된 상황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향상음악회 곡으로 결정을 한다면 한 시간동안 반주와 함께 음악을 만들어 볼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붕뜨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비교적 반주가 쉬운 다른 곡들로 그 날 레슨을 받게 되었다.
레슨이 끝이 나고 이제 향상음악회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답답한 마음에 그 날 저녁 반주자에게 전화를 했다. 자꾸 이렇게 연습이 안 되어있으면 나는 또 보챌 수 밖에 없다고, 많이 버거워하는 것 같은데 당장 레슨이 진행이 안 되면 안 되지 않냐고, 뭐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어 하는건지를 물어봤다. 그러자 반주자는 향상은 끝났는데 추계음악회를 나가게 되어 그 준비로 인해 갑자기 바빠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연습해오겠다는 말을 했다. 지난 레슨 때 <Meine liebe ist grun>을 할 지 안 할 지 확실히 정하지 못했기에 다음 레슨까지 연습해야할 곡은 결국 더 늘어나게 되었는데 연습 가능하겠냐고 물어봤다. 연습해오겠다는 말을 했다. 더이상 할 얘기도 없어 그러면 향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잘해보자는 말과 함께 대화는 끝이 났다.
몇 주 뒤 2015년 2학년 2학기 향상음악회는 그렇게 끝이 났다. 개운해야할 기분은 되려 착잡하기만 했다. 그날 밤 반주자에게 향상음악회 반주비를 부쳤고 바로 얼마 뒤 나는 반주자에게 더이상 반주를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를 전했다. 반주자는 너무 갑작스럽다는 듯 조금 당황스러워 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이왕 함께 시작하게 된 것 한 학기를 같이 끝마치면 좋겠지만 실기 준비마저 반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기는 싫었다. 당황스러워 하는 기색조차 당황스럽게 느껴졌으나 더이상 나가면 뚜껑이 열릴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렇게 반주자의 자리는 또다시 공백이 되었다. 실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그 공백이 조급하게 느껴질 법도 하나 되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세 번째 반주자를 거치며 반주와 반주자에 대한 생각은 또다시 변화했다. 쾌활한 성격은 조금 뒷전으로 밀려났으며 성실함이 최우선이 되었다. 또한 음악의 충돌 또한 굉장히 큰 요소로 떠올랐다. 가끔 노래를 하다보면 반주가 혼자 느려지며 표현될 때가 있었다. 직접 반주를 쳐 볼 때면 그 부분을 왜 느리게 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난 그렇게 노래한 적이 없었다. 혹은 나의 노래는 느려졌으나 반주는 같은 템포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음악은 충돌하고는 했다. 그 전 반주자들은 항상 자신의 음악을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노래를 하는 도중 그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맞춰주지 않는 반주는 집중을 흐트리고 생각을 많아지게 하는 반주였다.
여느 '끝과 시작' 시리즈처럼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남겨보려 시작한 글이었다. 그러나 글은 반주에 대한 얘기로 퍼붓듯이 쏟아졌다. 지난 시간을 떠올릴 때면 늘상 벅찬 감정을 느끼곤 했었다. 글로 옮기며 그 감정들을 되새기고 추스르며 그 위에서 또다시 원동력을 얻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 글은 너무도 나를 지치게 했다. 2015년 12월에 시작된 글은 2016년 어버이날을 맞이한 지금에서야 끝이 났다. 쓰면 쓸수록 기분은 나빠졌고 화는 도무지 풀리거나 삭혀지지 않았다. 몇 달만에 들어와 몇 문단을 간신히 써나가거나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은 문장들을 고쳐쓰기를 반복해야 했다. 화를 내기까지에는 수많은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으나 한번 텨져버린 화를 삭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것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2학년 2학기 실기준비를 하며 새로이 맞이한 반주자의 얘기는 다음 글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어떻게든 글을 마무리짓고 싶다. 힘든 일은 잊지 않고 고개를 드민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연속되어 이어진다는 생각마저 든다. 결코 자멸하거나 소멸되는 일 없이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러나 기쁨 또한 마찬가지이다. 컵에는 물이 반이나 있을 필요도 반 밖에 없을 필요도 없다. 물은 반이 들어있고 정확한 반이 아니어도 아예 없거나 아예 꽉 차 있지는 않을 것이다. 괴로움과 기쁨도 다르지 않다. 삶에는 그 두 가지가 알 수 없을 비율로 알 수 없게 놓여있는 것이다. 그저 잔을 들고 삼키는 것이다. 그것이 알 수 없는 다가올 삶을 마주하는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