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선정이 그동안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을 했다. 내겐 '나 이 노래 좀 불러요' 하는 곡이 없었다. 최근 1년 들어서야 겨우 두 곡 정도 생겼을까. 이 노래 잘 맞는다는 얘기를 들은 곡들은 전부 내 기준에서 쉬운 곡들이었다. 정복하기 쉬운 곡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실기시험과 향상 연주회에서는 단 한 번도 부른 적이 없다. 지나쳤다. 몇 달 뒤 있을 실기시험 곡으론 몇 달간 집중하여 가까스로 정복할 수 있는 곡이 어울린다고 여겼다. 실력도 그렇게 늘어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정복에 성공했던 적은 없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을 했고 과정에 후회 또한 없었지만 또다시 재현하고 싶은 결과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지금에 생각하길 잘할 수 있는 곡을 택하고 준비했더라면 음악적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음 자체를 무리 없이 낼 수 있어 가사의 의미와 곡의 분위기, 연주 자세와 연기 등 노래와 연주에 있어서의 많은 요소들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 하나같이 지금의 내게 부족한 것들 말이다. 선택했던 곡들은 음을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준비하는 기간 내내 음 연습만으로도 벅찼다. 나는 학교를 다닌 내내 주구장창 그 짓만 해댄 것이다. 단 한 번도 곡을 완성했던 적은 없었다. 어울리고 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절대 탄생할 수 없는 한심한 상황을 스스로 초래했다.
삶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잘할 수 있는 일보단 하고 싶은 일을 택하던 나였다. 덕분에 삶은 행복한 순간들로 가득했다. 일상은 여행처럼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결과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떨까. 애매하다. 추구하던 행복을 포기할 용의는 없다. 단지 좋아하는 일에 더욱 몰두하기 위해선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제서야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에 다다랐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까지 온 지금에서야 말이다. 교수님이 그렇게나 말씀하시고 난 매번 고개를 갸우뚱 하던 그 말을 이제야 받아들일 마음이 되었다.
적당히 좋아했다면 지금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더 알고 싶고, 더 잘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의 순간을 뛰어넘어 보려 한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보려 한다. 많이 늦었지만 말이다. 잘할 수 있는 곡을 불러 보려 한다. 노래하는 즐거움을 잃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는 다시 돌아오면 된다. 그때의 음악은 내게 취미로 밖에 남을 수 없다 해도 말이다. 시간은 멈춘 적이 없고 나는 끊임없이 구른다. 생각을 하고 하다가 생각들도 같이 구른다. 엎치락뒤치락 뒤따라 굴러오다 튕겨나가거나 함께 굴러간다. 유수처럼 굴러가며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나도, 생각도 변해간다. 개인의 시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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