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뜬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뒤집힌 친구 도와주는 거북이의 우정>이란 영상이었다. 친구를 도와주는 거북이의 모습도 좋았지만 오늘따라 거북이의 다리와 발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뒤집힌 상태라 다른 때보다 다리가 더 많이 드러나서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예전에 코끼리를 보다가, 더 자세히 보다가 이렇게 이상하게 생긴 생물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마치 그때처럼, 거북이의 다리와 발이 일순간 확대되듯 눈에 팍 꽂혀버린 것이다. 그것의 생김새는 영화에나 나올법한 용의 다리 같았다. 그리고 거북이의 생김새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등껍질을 벗은 거북이의 모습 말이다. 저런 다리를 가진 거북이의 전신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걸까.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사진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네이버에 <거북이 알몸>으로 검색을 해봤다. 원하는 자료는 나오지 않고 뜬금없이 김병만의 책이 검색 키워드에 걸려 나왔다.
그런데 젠장할, 저 책 제목에 이끌려버린 것이다. 자기개발서와 자서전은 필사적으로 피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클릭해버렸다.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목차가 있었다. 수필처럼 작은 제목들이 많이 붙어있는 구성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4개의 굵은 소제목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마지막 소제목이 눈에 들어왔었다. 'PART.4 기어서라도 가겠습니다' 잠시 마우스를 멈추고 잠시인지 한참인지를 그러고 있다가 그 위로 또다른 소제목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게 그 소제목들이다.
PART.1 가진 건 꿈밖에 없었습니다
PART.2 될 때까지 했습니다
PART.4 기어서라도 가겠습니다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듯 한숨을 쉬었다. 책 표지에 그려진 김병만의 얼굴과 표정을 빨려들듯이 응시했다. 예전 KBS 프로그램 중 김승우가 진행하는 <승승장구>라는 토크쇼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김병만이 출연한 편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응, 그랬구나> 정도였는데 지금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될 때까지 하는 것과 쉬지 않고 하는 것은 그냥 지금 자신의 모습 같아서 기분이 좀 그랬고, 가진건 꿈밖에 없었다는 것과 기어서라도 가겠다는 말은 <나는?>이란 질문을 돌아오게 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서 그에 앞서 고려해야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 나는 얼마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그 고려해야할 것들 중의 대개를 무시하거나 혹은 견뎌내는 면역 따위가 생겼다. 그로써 결정과 선택은 조금 쉬워졌다. 하지만 절대 버릴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조금 달리 말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 다섯 손가락안에 꼽히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가족인데 잔인하게도 그들과 나의 시간은 평등하게 흘러가고 그들은 적어도 30년을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음악을 늦게 시작했다. 늦게라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늦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시작한 것 치고는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할 때면 한없이 더디게 느껴진다. 현실적으로 말해 내가 어느정도 안정적인 수입을 가지게 되었을 때 과연 그때에도 조부모님이 살아계실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 보고 앞만 보고 그렇게 갔는데 도착해보니 내가 알던 사람들은 이미 없어졌다면 난 그 공허를 견뎌낼 수 있을까? 비단 조부모님만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겠다. 될 때까지 하고 있고 쉬지 않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만을 바라보고, 또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 기어서라도 가야만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그렇게라도 한번 가보고 싶다. 하지만 난 결국 손에 꼽히는 그 몇가지들을 절대 버릴 수 없을 것이다. 혹시 이것 또한 깨버려야할 어떤 알껍질 같은 낡은 생각일까? 아니면 성격 혹은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나다운 삶인 걸까. 순응과 체념이 필요한 때는 대체 언제인걸까. 장벽인걸까 토양인걸까. 언제 뛰어넘고 언제 껴안아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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