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들어온 지 어느새 1년이 지났고 내일이면 새로운 후배들과 함께 학년이 바뀐다. 노래는 다행히도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고 생활은 이렇다 단정지어 말하기 힘들다. 결과는 노력에 비례한다는 것을 여전히 믿고 미련함을 빙자한 반복을 끊임없이 반복 중이다. 포기한 것은 아직까지 없으며 뻗어나갈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가지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지난 <끝과 시작>의 두 번째 글을 작성한 뒤로 9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너무나도 일찍 잠에서 깨어 습관처럼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군악대 시험을 보고 왔다. 응시자는 스물 다섯 명 정도였고 시험장으로 이동하기 전 한곳에 모여 대기했다. 대기실은 판넬 따위로 세워진 가건물이었고 각각 의자가 6개씩 딸린 직사각형의 커다란 테이블 6개가 3개씩 2줄로 열맞춰 놓여 있었다. 나는 버릇처럼 구석진 끝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시험장 앞으로 3명씩 대기했고 한 명씩 순서대로 들어가는 것이었기에 생각보다 대기 시간은 길었다. 따분함에 대기실 안을 두리번거리다 그제서야 알게 됐다. 다들 서로 잘 알고 있었다. 테이블엔 마치 지정된 것처럼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총총히 모여앉아 있었다. 순간 주변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이대로 학교를 다닌다면 지금의 느낌을 내내 안고 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학에는 따로 사레슨을 받지 않았다. 그것이 맞든 틀리든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이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른 막연한 생각으로, 군악대에서는 어차피 레슨 따위는 없으니 스스로를 평가하고 수정해나갈 수 있는 잣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번 방학은 그에 대한 세 달 간의 실험이었다. 이번에는 특히 책을 많이 활용했다. 정말 어떠한 기준도 가질 수 없었던 때에는 던져주는 고기를 받아먹듯 최대한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조금씩 기준을 가지고 판단이 서게 되며 더이상의 무분별한 수용은 불필요해졌다. 수많은 이들의 목격담으로부터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그려내듯 성악에 관한 저서들을 줄줄이 읽어내며 그들이 공통적으로 그려내는 정답에 가까운 어떠한 사실들을 읽어내려 노력했다.
잠에서 깨면 잠시 뒤척이다 옷을 껴입고 무선포트에 물을 끓여 달달한 차를 마신다. 모니터를 켜고 지난밤 들었던 노래 중 다시 듣고 싶은 노래를 재생시키고 몸이 따뜻해질 때까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는다. 20분 가량 스트레칭을 한 후 하루 중 가장 건강하게 먹는다는 생각으로 아침을 차려 먹고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선다. 학교로 도착하고 사물함에서 악보 무더기를 꺼내 자리가 있다면 레슨실D나 작곡실내악실에 짐을 푼다. 손가락과 팔과 어깨 스트레칭을 다시 한 번 한 후 피아노를 치며 바깥 공기로 차가워진 몸을 다시 덥힌다. 정수기에서 물을 떠와 바닥에 뿌린 후 발성 연습을 시작한다. 발성과 피아노, 혹은 발성과 책 등을 반복해가며 충분히 쉬어가며 연습한다. 때가 되면 점심을 사먹고 피곤하지 않다면 저녁까지 사먹고 들어오며, 그렇지 않다면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는다. 방학 중 하루의 일과였다.
음악을 전공하기 전까지 음악대학의 연습실은 내가 속하지 못한, 눈치 보여가며 잠시 들어가 앉아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내가 그곳에 속하지 못했음을 끊임없는 상기시켜주는 잔인하고도 건조한 장소였다. 답답하고 갇힌 공간을 싫어하는 내가 지금의 연습실에 오랜 시간 아무렇지 않게 머물 수 있는 것은 그때의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곳은 내가 성취하고 얻어낸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장소가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며 교내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다. 바라던 것이 일상이 되어가는 나날을 매일같이 느끼는 곳이다.
직업에 대한 최종적인 목표는 없다.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는 꾸중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지금에 최종적인 직업을 정할 생각은 없다. 단지 여러갈래의 길만을 알아둘 것이다. 선택은 선택의 때에 이르러 하면 되는 것이며 지금은 그 때가 아니다. 유일한 목표라면 군악대 성악병이라는 단기 목표가 있다. 무대 경험이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군악대 성악병은 그 부족함을 많은 부분 채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시창 공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 가장 절실하다. 혼자 공부하려면 참 꾸준히 잘 안 되는 부분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감독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다. 그 외에는 지금과 같이 꾸준히 해 나가면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가능한 많은 학내 연주에 참여할 계획이다. 글이 거추장스레 느껴져 그만 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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