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이가 찍은 여행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지인들이 내미는 사진들은 그들의 이야기 자체에 관심이 있어 유심히 들여다봤을 뿐 모르는 글쓴이·작가의 것은 관심 밖이었다. **경찰서 방순대로 자대배치를 받게 되며 서울의 주요 중심지들을 다니게 되었다. 광화문·경복궁 등 주요 시설 근무를 위한 것이었으나 모든 것인 처음인 신병의 입장에서는 때때로 여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버스까지 타고 다니며 딱딱 내려주니 더욱 그랬다. 그러한 장소들 가운데서는 추억이 서려있는 곳들도 있었다. 나는 뜻하지 않게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걸었던 길과, 함께 식사했던 장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오늘의 근무지로 향하는 버스를 타며 오늘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곳 **방순대에는 다행히 생각보다도 읽을만한 책들이 많았다. 그리고 때마침 서울 지리에 관심을 가지던 터라 이 책을 가장 먼저 집어들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전까지 그리도 멀리했던 여행담과 삽입된 사진들이 너무도 재미있게 읽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타인의 이야기와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입대 전 까지의 나의 삶이 너무나도 자유롭고 충만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삶 자체가 여행과도 같아서 다른 이의 이야기에는 무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의 삶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렇듯 타인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이전보다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운 좋게도 경찰서에서 나눠준 '교양일지'와 '의경수첩'에는 각각 서울의 지도와 광역 지하철 노선도가 포함돼 있었다. 지리에 무지한 나는 '두근두근 서울산책'과 함께 이들을 항상 펼쳐 놓았다. 놀랄만큼 괜찮은 장소들이 많았는데 특히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동대문의 위치였다. 자취를 하며 서울 생활을 시작한지도 벌써 9년 째이다. 그러나 그동안 서울의 지도를 들여다본 적은 전무후무했고, 그나마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보자면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이용하며 일주일에 몇 번씩은 들여다보았다. 그런 나는 '동대문'이 반드시 '신설동'의 위에 위치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노선도 상으로 둘은 일직선 상에 놓여 있으나 환승역 등 주변의 노선으로 인해 동대문이 분명 더 높이 있는 듯한 착시를 불러 일으킨다. 나는 실제 지도상의 동대문의 위치를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동대문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신설동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서울시 지도와 각 구별 확대 지도가 함께 있는 책과 지도를 사려 한다.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 다니게 될 곳들을 찾아보며 또 그들의 위치를 표시해두려 한다. 마치 여러번 돌려보아 밑줄이 겹겹이 쳐진 참고서처럼 그때 그때의 흔적들을 더해 가며 한눈에 머물렀던 곳들을 알아볼 수 있는 '로케이션 로그'를 만들어 보고 싶다. 아마 첫 외출의 데이트 장소도 이 책을 참고하게 될 것 같다. 편지를 제외하고는 군대에서 처음 쓰는 글이라 마지막까지 낯선 느낌이 남아 있다. 앞으로 이곳에서도 많은 글을 읽고 또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다. 행복한 생활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