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설 때가 되어서야 예매한 승차권의 시각을 확인했다. 12시 30분 열차인줄 알았더니 12시 15분 열차였다. 결국 서울역에는 20분이 다 되어 도착했고 마치 예정이라도 된 것처럼 12시 30분 부산행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를 놓치는 것은 이젠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 되어버려 말없이 다음 열차에 올라타면서도 거리낌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개천절 연휴라 그런지 객실 사이의 복도 통로 또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간이로 마련된 두 좌석에는 이미 군인들이 앉아 있었다. 잠시뒤 열차는 출발했고 곧이어 객실에서 두 아이와 한 어머니가 복도로 나왔다. 그녀는 시간을 착각하고 열차에 올라탄 듯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서 서서 가게 된 아이들에게 미안해 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군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했다. 승무원들이 머물곤 하는 작은 공간에 서있던 일행도 그들과 함께 나와 다른 칸으로 이동해 갔다. 난 그 비어진 공간으로 들어가 작은 책상 같은 곳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한 정거장쯤 지나자 승무원이 승차권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키가 185 가랑 돼보이는 남자 승무원이었다. 그는 열차 시각을 착각한 어머니와 내게 다음부터는 승무원을 보자마자 열차를 잘못 탔다고 말하라고 했다. 놓친 열차의 시간이 흐를수록 수수료가 붙어 반환되는 금액이 줄어든다고 했다. 친절한 안내와 친절한 표정이었다.
조금 전의 그의 표정을 잠깐 다시 떠올렸다가 이내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었다. 한 시간 가량 지나자 엉덩이가 아파왔다. 가방에 있던 여행용 티슈를 꺼내 바닥에 깔고 앉았다. 한 시간 가량을 그러고 또 달렸다. 내가 앉아있던 곳은 KTX 시네마 객실과 특실 사이, 객실번호로는 1호와 2호차의 중간 복도였다. 승무원은 그곳에 상주해 있었고 열차가 정차 할 때마다 내려가 탑승하는 승객들을 맞이햇다. 복도에는 객실 안에서 떠드는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부모들이 가끔 있었는데 승무원은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살갑게 말을 건넸다.
나는 여전히 그 좁은 공간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사실 그 공간은 승무원을 위해 마련된 공간인 듯 했다. 하지만 그는 되려 내게 좌석을 체크하는 장비와 옷가지 등을 책상 위에 올려놔도 괜찮을지 물어보곤 했다. 그리고 동대구역에 다다를 때쯤 그는 좌석을 체크하는 듯 싶더니 조금 있으면 빈 자리가 많으니 가서 앉으라고 말했다. 뭔가를 말하려는 제스처에 이어폰을 빼면서 들은 말이라 순간 혹시 잘못 들은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만큼 그는 친절했다.
동대구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차했고 나는 빈 좌석 중 하나를 골라 앉아 올 수 있었다. 평소 KTX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그리고 복도는 생각보다 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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