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기가 끝난 다음 다음날인 목요일이었다. 지난 3주간 오직 실기곡 3곡만을 줄기차게 불렀던 지라 이제는 다른 곡을 맘껏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도 들떠 있었다. 다음 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발성 연습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 날은 발성과 함께 크로스오버라 부를 만한 곡들의 악보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아마 저녁 8시쯤이었다. 이어폰을 꼽고 조금전 녹음한 노래를 듣고 있었다. 문 소리가 나는 것 같았지만 연습실 옆방의 문 여닫는 소리가 종종 크게 녹음이 되곤 했으므로 그런 소리인 줄 알았다. 잠시 뒤 등 뒤가 어두워지는 것 같아 돌아다봤더니 엄청나게 큰 교수님이 바로 뒤에 거대하게 서 계셨다. 나는 너무도 놀라 아마도 토끼 눈에 얼굴이 붉어졌던 것 같다. <어떻게 연습하고 있니> 교수님께서 여쭤보셨다.
오래 머문 연습실이 늘상 그렇듯 곳곳에 악보가 널부러져 있었고 다 마신 잔들과 벗어둔 구두와 양말 따위가 한데 어질러져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방을 쓱 둘러보시더니 녹음기를 발견하시곤 연습하면서 녹음하고 그걸 다시 들어보는 식으로 하냐고 여쭤보셨다. 그렇다고 하자 여러 설명과 함께 녹음기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 뒤로 <압보자가 너무 안 된다>, <가슴 소리를 너무 많이 쓴다> 등 지난 가을 입시때부터 바로 얼마전 실기까지의 노래에 대한 평과 지적을 해주셨다. 직접 소리를 내 주시기도 했고 한동안 레슨을 해주셨다.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 했지만 교수님께 레슨을 받아본 것도 처음이었고 갑작스레 연습실에 들어오신 순간부터 그저 멘붕이었다. 교수님께서 나가신 후 레슨을 해주신 것에 대한 것보다도 그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와 주신 것에 고마웠다. 문에 난 조그만 창으로 연습실 안을 한 번 쓱 들여다봤다가 쓱 지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2학년 1학기, 세 번째 실기시험이 끝이 났고 성악을 시작한지는 2년 9개월이 되는 시점이다. 다행히도 노래는 여전히 나아지고 있으며 지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은 든 적이 없었다. 학기 초에는 선생님과 사이가 틀어져 서로 얼굴을 붉혔던 적이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었고 선생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후에 가질 수 있었던 공통된 생각은 서로가 열심히 하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앞으로도 노래와 소리에 관해서 더욱 나를 괴롭히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그 뒤로 선생님과 조금 더 가까워졌고 레슨 시간도 더욱 알차게 보낸 것 같다. 학기 중에는 실기시험과 향상음악회를 제외하고 병원연주, 작곡 졸업연주, 춘계음악회에서 노래를 했다. 가능한 많은 학내 연주에 참여하리란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는 부합한 것 같다. 실기시험이 끝난 지금에서부터 다시 해야할 것은 여러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실기곡 준비로 편향되어 있는 소리의 이미지를 수정하는 것이고 더 나은 발성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것이다.
아직 답을 내리지 않은 물음이지만, 더 나은 소리를 찾고, 만들기 위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을 완전히 잊은 채 새로운 것에 집중해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틀 위에서 조금씩 더해가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후자쪽이었다. 당장에 가지고 있는 것에서 개선해나가는 것이 오히려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 어차피 많은 공통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읽었던 책의 몇몇 저자들도 그랬고 선생님께서도 이러한 나의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소리를 내는 데 있어서의 메커니즘의 상당 부분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며 조절해야 한다. 호흡을 마시기 전의 근육의 이완 상태부터 소리의 끝을 맺을 때까지 말이다. 체득된 것은 아직 생각보다 적어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런데 새로운 길, 혹은 울림점만을 생각하며 다른 것들은 어떻게 되든지 신경을 쓰지 않다보면 되려 모든 것이 틀어져버려 정작 새로운 길, 혹은 울림점에 대한 집중마저 흐트러지곤 했다.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최근에 자주 든 생각 중에 하나는 음악을 할 때의 기쁨보다도 하지 못할 때의 열망이 더욱 커서 결국은 음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래를 부를 때의 순간은 마치 낮은 다리에서 깊은 계곡으로 뛰어든 것 같은 기분이다. 가라앉는 몸 주위로 기포들이 떠오르는 상쾌함이 노래를 부를 때에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것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에 있다. 발성적으로 너무나도 미숙했을 때에는 연습 후에 목이 너덜너덜해지곤 했다.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틀은 쉬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컨디션 관리를 위해 꼭 쉬리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저녁이 오면 어김없이 참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더욱 심했다. 노래를 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고 노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있는데 노래를 하지 않을 이유는 도저히 없었다. 이 열망은 아마도 지나온 삶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고유한 습성 같은 것이다. 나는 절때로 그것을 잊거나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지켜내는 힘에 관해서도 종종 생각하곤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거나 깨닫는 것도 참 어려운 것이지만 그 마음을 지켜내는 것 또한 참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얼마전 꿈에 나왔던 예전의 그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해야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며 울고 있던 내게 당장이 아닐지라도 언제 이룰 지 모를 꿈을 위해 그 꿈의 공간만은 반드시 확보해둬야 한다는 그 말이 어린 시절에 참 가슴 깊게 남았다. 바깥으로부터 흘러드는 여러 얘기들, 죄어오는 상황들, 그 모든 것들로부터 그 공간만은 필사적으로 지켜내려 노력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말은 날카로워지고 상황들은 무거워져 갔다. 나는 단련되어 갔고 조금 덜 상처받는 방법들을 알아갔다. 그렇게 강해졌다면 강해진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열심히 준비해서 잘해보고자 했던 무대가 있었다. 하지만 함께 했던 이들은 별 욕심도, 성의도 없는 듯 했다. 그런 모습들과 함께 하고 있자니 나마저 그 무대가 싫어지려 했다. 처음의 잘해보고자 했던 그 마음이 사라질까 두려워 되려 그들에게 화를 내 버렸다. 잃어버린 감정은 되찾기 힘들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말과 대안을 마련해 두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이 전부에 가깝지만 때로는 혼자 웅크리고 앉아 생각해낼 수 있는 최악의 끝까지 생각이 꼬리를 물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현실적인 것일까라는 의문과 함께 쉽게 털어버린다. 현실이란 지금 내가 이루어나가고 있는 삶의 최전선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대개 부정적인 미래를 뜻할 때가 많다. 그들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현실적인 생각이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란 미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암울하고 부정적인 것만을 선별적으로 골라낸 것을 말한다. 그런 그들에게는 그들의 표현 그대로 그것이 곧 그들의 현실이 될 것이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해도 이룰 수 있을까 말까 한데 행동은 고사하고 그러한 생각마저 없다면 기대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나는 지금 역시도 너무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화를 참지 못하고 글로써 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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