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편의점 알바생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매일,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도시락을 사러 편의점에 간다. 그날도 어김없이 도시락을 사기 위해 들린 날이었다. 늘상 그러했듯 너무나도 자연스레 계산대에 도시락을 올리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꼼지락 거리다 좌측 가판대 아래쪽을 차버렸고 진열돼 있던 물건 서너개가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당연히 허리를 숙여 물건들을 원상 복귀시켰다. 그런데 계산을 하며 얼핏 알바생의 웃는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잠시 묘한 기운을 느꼈다. 그 때문에 당시에는 이렇게 주워놓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나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도시락을 살 때마다 알바생이 한 마디씩 건네기 시작했다. "이 도시락은 좀 별로지 않아요?", "이게 그나마 제일 무난하고 괜찮죠?", "저번에도 이 도시락 사가셨죠?", "이 반찬만 없으면 좀 괜찮을 텐데, 그쵸?" 주구장창 도시락만 가져가다보니 항상 하는 말도 도시락에 관한 것들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아, 네...", "네, 그런 것 같아요...", "네, 맞아요..." 따위의 말 줄임표가 붙을 법한 대답들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편의점이 다시금 봉투값을 받기 시작했는데 알바생이 봉투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마냥 주기 곤란하니 봉투값을 받은 것처럼 주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때부터 점점 편의점에 가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새로 나온 혜자 누나의 장어덮밥 도시락은 입맛에 딱 맞았다. GS25는 도시락의 종류가 가장 다양했다. 석천 형 도시락도 여전히 맛있었고 위치도 오피스텔과 가장 가까웠다. 여러모로 GS25에 가야할 이유는 많았다. CU와 세븐일레븐 역시 바로 옆에 있었지만 GS25를 저버릴만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여러모로 신경쓰이는 것들이 많았다. 나의 도시락 취향에 관해서 더이상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고 봉투는 제발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20원을 내고 계산을 했으면 했다. 미안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를 모른체 했으면 했다. 제발.
서울 생활에 젖어든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처음에는 사람들이 살갑지 못하고 인정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제발 거리를 유지해줬으면 하고 바란다. 편의점은 단지 편의점으로만 존재했으면 하는 것이다. 20년 동안 알고 지낸 주인이 있는 슈퍼마켓보다 누군지 모를 알바생이 있는 편의점이 훨씬 편한 것이다. 나는 편의점에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락을 사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냉정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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