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끈을 묶을 때마다 올라오는 쓰레기 냄새를 참을 수 없었다.
사실 냄새야 세탁 한번 하면 없어지겠지만 너무 많이 닳아서인지 보는 사람마다 신발 좀 바꾸라는 말을 했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폰 좀 바꾸라는 말과 신발 좀 바꾸라는 말이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인 게, 나는 더 좋은 물건을 발견하면 예전 것을 쉽게 버리고 쉽게 잊곤 하는데 유독 그러지 못하는 게 신발과 폰이다. 왜 그런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신발과 폰엔 묻어있거나 묻어나오는 것이 너무 많다.
편하고 좋다. 짙은 밤색. 길거리에 파는 슬립온은 안감이 너무 부실해 발껍질이 다 일어날 것만 같았다. 락포트 슬립온이 디자인도 예쁘고 워낙에 가벼워 너무 끌렸지만 가격이 너무 창렬이라 포기했다.
지금 신고다니는 운동화. 아직 버릴 때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운동할 때 좀 더 신기로 했다.
얘도 이럴 때가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위의 닳은 운동화가 더 좋다. 더 내 것 같은 느낌이다.
새 신발에 발은 끼우고 있지만 내 발이 아닌 것 같다.
그 전 신발. 이건 내가 쪽팔려서 더이상 신고다닐 수 없었다. 사실 이번에도 곧 이렇게 될까봐 주위 말을 좀 귀담아듣기로 했다.
정말 모두의 시선을 강탈할만큼 낡고 떨어진 민폐화들은 그래도 처분했지만, 여전히 신발장은 버리지 못한 신발들로 가득하다. 테니스화가 가득하고, 가죽으로 된 부츠와 각종 캐쥬얼화들이 여전하다. 혹 다시 신게 될까봐 모셔둔 건 아니다. 아마 다시는 신을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한다. 죽은 식물 따위는 잘도 버리면서 이런 낡은 물건 하나 버리질 못하는 걸 보면 참 이기적이다. 결국은 나를 포기 못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쉽게 버린 것들은 한번도 내 것이라 생각했던 적이 없었고, 그랬기에 한번도 나와 동일시했던 적도 없었다. 숨을 쉬고 있는 것들에겐 특히 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