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파도에 앞서 잔잔히 밀려드는 물결이 있다. 나는 움츠린 채로 간신히 가닿을 만큼 손끝을 대어본다. 따뜻한지 차가운지 모를 감촉을 느낀다. 물이 드나드는 경계면 위로 손바닥도 한번 올려본다. 손등을 타고 넘실대는 물결을 느낀다. 탄산 같은 거품이 소리를 내며 간지럽게 터진다. 한없이 밀려드는 물결에 기분마저 일렁인다. 하지만 왜인지 나는 믿지 못한다. 잔잔히 밀려드는 물결을 믿지 못하고 손끝의 감촉과 느낌과 기분을 믿지 못한다. 어쩌면 다가올 파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파도를 본 적이 있을까? 그 색깔조차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