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지 계절은 항상 현재의 것보다 다가올 것에 더 마음이 쓰였다. 봄이 되어서는 여름을 기다렸고, 여름에는 가을을, 가을에는 겨울을, 그리고 겨울에는 또다시 봄을 기다렸다. 현재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 더욱 노력했었다.
2학기가 끝난 이후로 당장에 준비해야할 곡은 더이상 없었다. 적어도 내년 4월 무렵의 향상음악회가 첫 일정이었다. 요즘은 그때에 부를 곡들을 아주 찬찬히 고민중이었다. 개강을 맞이한 봄, 4월 무렵에 어울릴 곡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Aprile>, <목련이여> 등 조금은 화려하고 따뜻한 곡들이 떠올랐다. 군악대 준비와 더불어 그 곡들을 간간히 연습했다.
두 대의 피아노가 있고 한쪽 벽면으로 길게 창이 나 있는 연습실이었다. 여느 때처럼 연습실 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길다란 창과 마주했는데 창 안의 모습이 반사됨과 동시에 창 밖의 풍경이 투영되어 왔다. 창 밖은 얼마전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추운 겨울이었고 그 맞은편으로는 봄의 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래, 봄의 노래를 봄에 준비하는 것은 너무 늦은 것이다.'
순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매순간은 기다림과 준비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겨울과 봄, 여름, 가을, 또다시 겨울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며 찰나의 순간들이다. 그에 반해 여름에 대한 기다림, 가을에 대한 기다림...은 연속적이며 상시적인 것이다. 현상들이 맞닿아 시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끊이지 않는 기다림이 시간을 끌어당겨 자꾸만 앞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이다.
마치 인력(引力)처럼 계절은 거스를 수 없듯 다가온다. 시간 속의 우리조차도 그들을 기다리며 함께 끌어당기고 있다. 흐르는 시간 위에서 계절은 흘러가고 그 속에서 함께 흘러가는 우리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레 다음에 다가올 계절을 기다리는 것이다. 찰나의 현상을 붙잡으려는 노력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