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은 아니었다. 단지 하나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취미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학기가 시작됐고 몇 주의 시간이 흐르며 몇 가지의 생각들이 교차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제는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조금 더 깊은 곳을 들여다봐야 했지만 표면상으로는 음악을 전공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이미 이루었다. 일말의 순간만이라도 바라 왔던 것이기에 8학기란 시간은, 아니...... 천(千)이란 숫자를 웃도는 나날동안, 매일을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 사정이 어떻게 됐든 성악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할 것은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갑작스런 변덕을 부려도 되는 것일까 생각했다. 원하는 것을 좇아 여기까지 왔다. 흔히들 글자를 왜곡해서 말하는 '현실적'이란 감각은 애초에 내다버렸다. 그 끈을 버리지 못하고 한 가닥이라도 물고 있었다면 그저 무언가의 순종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감(感)을 되찾으려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보다 더 큰 꿈, 이를테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가져 그 아이가 나 자신의 꿈보다 더 큰 꿈이 되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지금의 꿈에서 더욱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쳐내는 것이 옳은 것일까? 지금껏 그렇게 살아온 적은 없었다.
그렇게 두 극단 사이에서 질문은 잉태되었다. 하지만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질 않았고 이를 찾아나서야만 했다. 그러면서 20대가 된 이래 처음으로 나 자신의 나이를 헤아려본 것 같다. 내게 나이란 마치 손님을 위해 마련해 둔 실내화 같은 것이어서 평소에는 존재의 유무조차 잊고 있다 손님이 올 때면 냉큼 가지런히 내어놓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부모님과 국방부, 그리고 또다른 대학들을 위해 실내화를 꺼내와야 했다. 그러자 찾아야 할 답에 대한 마감기한이 생겨났고 그것은 생각보다도 짧았다. 적어도 이번 학기 안으로는 답을 내야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좋은 때에 좋은 대학에 들어온 다른 동기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처음에 고려한 것은 무대가 나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하는 것이었다. 무대가 맞지 않는다면 학사 졸업 후 성악 공부를 더 이어나갈 이유가 없었다. 무대에 서지 않는 혼자만의 만족에 도취된 노래는 취미로 충분하다. 이를 확인해보기 위하여 한 콩쿠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한국 가곡을 부르는 콩쿠르였다. 이를 준비하며, 또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며 정말 좋고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음악 공부를 이어가는 것으로 당장에는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학교 체육대회 행사 준비로 인해서 콩쿠르를 준비하는데에 절대적인 시간과 체력이 많이 부족했고 몸이 망가질 것 같아 결국 준비를 포기했다. 그 뒤로는 일단 실기레슨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식이었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진지하게 임함에도 여전히 음악이 좋고 노래하는 것이 좋다면 계속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3월 초 개강 후 석 달이 지났고 연습을 쉰 날의 횟수는 5일이다. 연습한 곡들은 부르고 싶은 곡들과 선생님께서 정해주신 곡들이었다. 노래를 쉬는 중간 중간에는 피아노 반주 연습을 했고 더이상 노래 연습을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부전공 피아노 실기 연습을 했다. 피아노는 청음과 박자 공부를 대신한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녹음한 노래를 듣거나 다른 성악가들의 곡들을 많이 들었다. 항상 녹초가 되어 돌아갔는데 기분은 좋았다. 좋아하지 않으면 이렇게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을 자주 했다. 실기 시험에서는 연습하고 준비한 만큼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해 실전에 약한 것일까란 생각을 스스로 많이 했다. 그 외에 몇 번의 선생님들과의 대화가 있었고 그러면서 지금의 대학을 다니며 음악 전공을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는 다른 일들과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도 간간이 했다.
결국 답은 여전히 구하지 못했다. 그 언제나처럼 또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결과는 노력에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몸이 너무 안 좋았던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 그 결과 소리는 생각보다 많이 변했다.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소리에는 아직 많이 못 미치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소리와 비교해보면 많이 변했다. 박자감은 좋아진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습했던 곡들의 반주 연습을 하며 박자를 통째로 익혔기 때문에 반주를 맞출 때 별 어려움이 없었다. 청음은 수업과 피아노 연습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이번 학기에는 성악 실기 곡도, 피아노 곡도 잘할 수 있는 곡보다는 하고싶은 곡들 위주로 정했다. 나의 수준에 맞는 곡을 찾기보단 하고싶은 곡의 수준에 내가 맞춰지려 노력했다. 힘은 많이 들었지만 그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만약 보통의 아이들처럼 보통의 때에 이 대학에 왔다면 지금 하는 것처럼 4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조건들과 상황이 다르기에 단순히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보인다.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음악 공부를 시작하게 되며 나는 이제껏 가질 수 없었던 여러 기회를 잡은 것이다. 결국은 한 가지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나머지 기회들은 버려지게 될 것이다. 그 선택을 위한 판단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선택한 한 가지의 기회의 가능성의 크기가 결정될 것이다. 모두가 어떻게든 살아는 간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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