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러면 다를게 뭐야. 아니 결과가 좋아서 학교를 옮긴다고 치자. 1학년을 또 한다고? 이미 1학년만 세 번 했는데 이걸 처음부터 또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이에 관한 건 잠시 접어두고 다음 얘기를 해보자. 입시를 다시 볼 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그 이유로 준비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 때보다 실력이 훨씬 늘어나니까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 말 그대로다. 그게 뭐냐는 물음에 굳이 사족을 달아 국립대학의 학비 때문이라든지 임용은 전혀 생각이 없다는 등의 말 따위를 했지만 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이고 그냥 실력을 늘리기 위한 이유가 전부다. 그냥 그게 전부다. 스트레스를 받든 말든 고생을 하든 말든 모르겠고 실력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 따라잡아야만 했다. 아니면 자꾸만 지난 시간들의 사람들에게 화가 나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화를 내는 건 정말 싫다. 최소한 내 나이또래의 어떤 평균점에 가까워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현재의 상황을 탓하게 됐다. 후회하는 것은 정말 싫다. 하지만 생각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적어도 3, 4년의 갭을 메워야만 했다. 그래서 '늦게 시작했으면 어때, 이제는 제법 비슷해졌는데'란 말이 최소한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러면 지나간 시간들의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을 전부는 아닐지라도 조금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발 그래서 그들에게 더이상 화가 나지 않고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지 않았으면 했다. 제발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못할 수준의 강박을 갖게 됐다. 다시 집어치우고, 조금 다른 얘기. 이전 학교를 다닐 때 한 번도 그 학교의 학생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그냥 학생증을 발급받은 외부인과 다를게 없었다. 넌 항상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말을 자주들었다. 아니 나도 그게 짜증났다. 주어진 것, 뭐 통과의례 따위의 것들을 원만하게 넘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왔을 때 매우 기대를 했다. 아니 그리고 기대한 것 이상의 생활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즐거웠던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솔직히 꿈인 것만 같아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순간들이 많았다. 학기 초부터 반수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역으로 대학에 들어온 아이들도 많고 과의 특성상 그러한 고민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할 지 안 할 지 확실히 모르겠는데 한 번 해볼까 생각중이라고. 최대한 내 생각에 가까운 표현을 찾아 말했었다. 방학이 다가올 때쯤 휴학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나 역시도 한 번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지금의 사람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마지막 시간인 것 같아서 포기하기 힘들었다. 비슷하거나 조금 모자라도 좋으니 지난 학기처럼 한 번만이라도 더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이 되었다. 2학기를 다니기로 결정한 것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수업중에는 시간이 날아가는 기분이 자꾸만 들어 창밖을 보게 됐다. 그리고 어느새 다음주면 입시가 시작된다. 반주자를 구했고 방학 때 받아오던 사레슨을 이어가고 있으며 학교 선생님께서도 도와주고 계신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수업이 많은 날이다. 입시 볼 생각을 하니 그 수업들이 갑자기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어떻게 말하고 수업을 빠질까란 생각을 며칠째 했다. 나도 모르게 우선순위에서 밀어버렸다. 학교 향상도 뒷전이 되었고 모든 일정과 신경은 입시를 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러면 대체 다를게 뭔가란 생각이 들었다. 이전 학교를 다닐 때와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 지금의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고 그것만을 생각하고 그래서 지금의 것들에 소홀한. 그런 모습. 지난 학기만 해도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병원에서의 연주라든지 실기시험이라든지 너무나도 기다렸고 정말 흥분되는 마음으로 했는데. 당장에 다가올 합창정기연주회와 실기시험이 그냥 눈 없는 백색 주사위처럼 텅 비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이게 다 입시 때문인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왜 어느 순간부터 난 이 입시를 잘 봐야만 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그런건 상관이 없었다. 왜 내가 가진 목표를 입밖으로 꺼내는 순간 난 그것을 이루어야만 하는 사람이 되는 걸까.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 어려운걸까. 난 거짓말이 싫다. 그래서 이러한 순간을 지날 때마다 또다시 말을 줄이게 된다. 아마도 내일 결정을 하게 될 것 같다. 만약 그만둔다면 사람들은 변덕이 심하다고 말하겠지. 난 여전히 할 지 안 할 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볼까 생각중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