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라는 명목하에 공부를 시작한 건 재작년(2012) 9월이었다. 일렬로 정렬하는 개기일식과도 같았던 시간. 터무니없다 여겼던 일들이 한데 늘어서며 믿기 힘든 단단한 길을 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마음 편히 노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왕복 세 시간의 거리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아주 작은 점과도 같은 시작에 많은 이들이 축하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이제껏 단련처럼 견뎌왔던 공부가 이젠 너무도 달아서 이렇게 즐겁게 공부해도 괜찮은건가라는 생각을 가끔 했다. 바로 그 다음해의 입시를 시험 삼아 봤다. 시험이 이렇게 흥분되고 재밌어도 되는건지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억하던 입시는 수백의 학생들이 강의실에 줄맞춰 늘어서 고개는 쳐박고 손은 미친듯이 놀리는 것이었는데 여긴 학생들의 표정이 밝았다. 신기한 감정 사이로 조금 짜증도 났는데 꺼내지는 않았다. 당해의 시험은 보기좋게 떨어졌고 마냥 즐거웠다.
레슨은 계속 되었다. 시간은 천천히 갔지만 잘 갔다. 레슨은 계속되었고 녹음된 소리는 점점 변해갔다. 듣는 귀도 많이 바뀌었고 추구하는 소리도 변해갔다. 하루의 노래 연습 시간은 가장 길면 두 시간 정도였다. 많은 시간 열차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두 발로 걸어서 많은 곳을 다녔고 계절의 변화와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밤낮의 구분은 없었으며 음악이 항상 흘렀고 시집을 쌓아두고 영화와 드라마를 저장해두고 섭취하듯 즐겼다. 그만둔 테니스를 대신해 수영을 다시 시작했고 늘상 그랬듯 수많은 공통분모들을 찾아내고 생활과 공부에 끌어다 썼다. 찌그러져 있던 공이 바람을 먹고 자전하여 마침내 온전히 걸어나가는 지구인이 된 것 같았다. 상처들은 생각보다 쉽사리 아물지 않았고 함께 가지고 가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레슨은 꾸준히 계속되었고 여름이 다가오며 수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성악과의 정원은 생각보다 적었고 그 경쟁률은 50대를 가뿐히 넘어갔다. 여전히 시험은 재밌었다. 운동 경기에서 가슴을 저며 오는 긴장감과도 닮아 쫄깃했다. 전형일이 겹치기 쉬운 수시에서 다행히 세 대학이 모두 다른 날이었지만 나흘을 연달아 보는 시험이었기에 마지막 날은 거의 죽을 쓰다시피 했다.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다. 좌절은 없었지만 '불합격', '불합'이란 글자를 연달아 보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시작을 하기까지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혹시나 한 사람이 평생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돼 있는 것이라면 하는 불안이 가끔 들어왔다.
레슨은 계속 되었고 피곤함과 힘을 빼는 연습 등으로 인해 운동은 일체 쉬고 있었다. 힘을 뺀다는 것은 전신에 빡 힘을 주고 살아온 내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어느덧 수능 시험일이 다가왔다. 여전히 공부를 하지 않고 볼 생각이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나쁘지 않게 나왔다. 정시를 준비하는 기간이 되고 원서를 고민하게 되었다. 공부를 시작한지도 1년이 넘어갔고 이번에는 해볼만하다는 생각이었다. 괜찮고 유명한 대학들의 성악과는 전부 가군이었고 나군의 대학들은 지방 캠퍼스나 그리 높지 않은 대학들, 다군도 비슷했다. 가군은 가고 싶은 대학, 나다군은 붙을 수 있는 대학을 쓴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을 따라 가군은 질러줬고 나군은 그래도 그 군에서 가장 높은 대학을 넣었다. 다군은 넣을 곳이 없어서 음악교육과 성악과에 지원했다.
시험은 근 일주일 간격이었다. 가장 빨랐던 가군에서는 나쁘지 않게 불렀다. 하지만 1차에서 떨어져 조금 허무했다. 나군은 입시곡을 잘못 준비해 시험장에서 돌아와야 했다. 내가 개념이 없는건지 반주자 선생님과 그냥 웃고 넘겼다. 다군은 음악교육과를 넣었다. 사실 성악과를 쓸 줄 알고 수능 공부를 안 했던 건데 다군 시험을 보고 나오며 '수능 공부 좀 할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은 계속 갔고 날씨는 많이 추워졌다. 레슨은 계속 되었고 사람들을 만날 때가 아니면 추워서 집에 쳐박혀 있었다. 어느덧 2월이 되고 다군 발표가 났다. 불합격이었지만 예비 1번이었다. 성악 커뮤니티를 통해 다군 합격자 중 포기한다는 사람을 봤고 합격을 가늠할 수 있었다. 입시가 일단락 되는 시점이었다.
여전히 내게는 시간이 너무나도 천천히 잘 간다. 시간은 내게 너무나도 큰 어떤 것이다. 입시준비기간은 1년 5개월 정도였다. 더 솔직해지자면 25년 일지도 모른다. 입학 후 더 좋다는 대학의 성악과로 반수를 할 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이것으로 아득한 처음의 목표를 이루게 되었고 지금과는 다른 또다른 열차에 올라타게 되었다. 입시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힘든 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의 성질은 다른 스트레스들과는 많이 다른 것이지만 어쩌면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고 그렇기에 이와 같은 힘든 시간을 그들과 함께 나누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것을 사치라 말할 것이다. 나 역시도 이전에 그러한 고민을 말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시작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던 일이 이제 성숙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어떠냐고 물으면 좋다고 답할 것이다. 즐거웠던 공부는 처음이었고 이제껏 가장 자유로웠고 많은 생각과 갖가지 감정을 느끼면서도 외면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삶은 이렇게 풍족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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