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피곤한 날이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순간 깜빡 졸 때가 있는데 얼마전 실기고사 기간 때가 그랬다. 사범대학 화장실의 칸막이 갯수는 남자 화장실 것만 해서 1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장애인용과 재래식을 제외하면 6개 정도 되는데 다 똑같이 생겼다. 아니 비단 사범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백화점과 지하철 등의 신식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양변기 달린 공중 화장실은 다 똑같이 생겼다. 칸막이도 다 비슷하게 생겼고 휴지가 달린 위치도 비슷하다. 아무튼 그래서 실기고사를 며칠 앞둔 매우 피곤한 늦은 저녁이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았는데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식은땀과 함께 놀란듯 잠에서 꺴는데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은 칸막이로 둘러싸인 변기와 휴지걸이가 있는 화장실 공간이었다. 잠들기 바로 직전의 상황들이 떠오르기도 전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이곳이 예전에 다니던 대학의 한 화장실이라면, 나는 여전히 또 같은 선택을 할까?'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왔고 이곳이 사범대학임을 확인했지만 질문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연습실로 향하며 '그럴 것이다'라고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그러자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그것이 영겁과 같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그래서 실기고사를 며칠 앞둔 그 시점에서 매번 이전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기 전의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스스로가 이것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때, 과연 그러한 때에도 매번 같은 선택을 내리게 될까. '아마 그럴 것이다'라고 답을 해봤지만 망설임이 있는 대답이었다. 질문은 그 뒤로도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우연을 가장한 확률의 원리처럼 이같은 질문을 갖게 되자 새로 개봉한 한 영화의 줄거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Edge of Tomorrow>란 영화였다. 죽을 때마다 매번 과거의 한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남자의 얘기 같았다. 구미가 당겼다. 그러한 반복되는 상황속에 남자가 느끼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러한 상황에 대해 남자는 무슨 말을 할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남자는 이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한 장면에서 그의 표정과 행동들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남자는 커피를 끓였다. 티타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커피를 끓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커피를 건넸다. 그의 표정은 매우 밝았고 다가오거나 돌아오게 될 것들은 그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처음에는 그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했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거나 극복하려는 데에 힘을 썼다. 하지만 종국에는 그러한 것들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몇 번을 반복하든 그에게는 하나의 대상의 존재만이 중요해졌고 그것에 집중하게 됐다. 매번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슬픈 것이었지만 그것은 반복되는 소멸과는 또 다른 것이었고 마찬가지로 시작하는 순간 또한 더이상 단순히 되풀이되는 시작은 아니었다. 그가 상황이 아닌 한 대상에게 집중하게 되자 그때부터 시간은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되었다. 왠지 이제껏 머릿속을 떠돌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섰을 때 그곳이 어디든 나는 내가 바라는 대상을 향해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상황은 항상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지만 대상들이 없다면 존재조차 하지 않는 가벼운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