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나날들은 견뎌내고 살아내는 하루의 반복이었다. 하루의 감정은, 깨어날 때의 두통에서부터 시작돼 점차 커져갔고, 잠들기 직전에는 말도 안 되는 정점에까지 달했다. 이러한 일련의 감정들은 아마도 일상의 몇가지 일련된 사건들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얼마전부터, 시험과 관련해서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고 그것이 점차 누적되어 갔다. 노래 공부에 있어서 잊고 있던 접근법을 떠올리게 됐는데 그것을 떠올리자 갑자기 할 일이 불어났다. 제자리에 있던 사람과의 거리가 한순간 멀어져버렸다. 꿈속에서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알람시계를 두 개 이상 맞추며 혼자 산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결국, 나는 눈이 충혈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끝도 없이 지치며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몇 분 간격으로 밀어내야만 했다. '계속할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그리고 며칠전이었던 것 같다. 또다른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다. 먼저, 나달의 US TENNIS OPEN 우승 소식을 접하게 됐다. 그는 최근 얼마간 부상으로 인해 성적이 많이 부진했는데 마침내 이를 극복하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아마도 내가 그를 처음 봤던 그 순간처럼 경기가 종료되자마자 바닥에 몸을 던지듯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또 그날은 한국 대 크로아티아의 국가대표 친선전 경기가 있었다. 어느새 경기는 후반 45분을 지나 추가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한국은 크로아티아에 2점 차로 뒤지고 있었다. 두 명의 해설위원은 많이 아쉬워하면서 점점 경기의 총평을 하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의 감독은 출전 기록이라도 쌓으라고 몇 분을 남겨두고 골키퍼마저 교체시킨다. 막바지이고 친선경기라 그런지 카메라 또한 경기장보다 관중들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한국의 이근호가 헤딩슛을 성공시킨다. 나는 그제서야 그의 표정이 경기 시작부터 종료 직전까지 변함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날의 늦은 밤에는 조금은 시원한 마음으로 공원에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바람이 시원해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살짝 얹어둔 채로 한참을 달렸다. 얼마 뒤에 화장실을 갔는데 나는 머리 위의 모자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자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당장에 쓸 모자는 이거 하나뿐인데'라는 생각에서부터 '추석이라 잘못하면 배송도 늦을텐데'라는 생각까지, 조금전까지 그렇게도 시원하던 바람도 이제는 모르겠고 옷에 땀이 밴 듯 찝찝한 기분만이 가득했다. 그런 기분으로 잔뜩 날을 세우고 눈에 불을 켠 채 지나온 길을 다시 돌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두 바퀴쯤 돌았을 때 길가 한편에 떨어져 있는 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분은 다시 좋아졌고, 오히려 조금 전보다도 훨씬 가벼워진 듯 했다.'아, 조금은 더 버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글을 발행하지 않고 저장해두었는데 며칠이 지나고 벌써 오늘이 되었다. 지난 밤 11시쯤 잠들었던 것 같은데 새벽 2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다행히 머리는 크게 아프지 않은데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방음실에서 한 시간 반 가량 피아노를 치고 노래의 가사를 외우려 집중하려 하자 다시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깨어있고, 공부하는 시간대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늦은 밤과 해뜨기 전의 새벽은 오직 글자만을 보고 달리는 암기와 같은 공부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다른 생각은 이러한 감정의 기복은 계속되리란 것이다. 예전 <힐링캠프>에 나왔던 한석규가 조금은 화난듯이 자신은 여전히 들끓는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뜻은 열정, 청춘과 같은 것보다는 한순간 들끓어 끓어 넘치다가도 뚜껑을 열면 쉬이-하고 다시 수면까지 내려가는, 또다시 언제 끓어넘칠 지 모르는 뚜껑 닫힌 뜨거운 냄비 같은 것이다. 나는 이를 부인할 생각은 없고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주위의 이들이 이러한 끓어넘친 물에 데이거나, 혹은 이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야 조금은 더 가까이서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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