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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여 - Tenor. 하만택 / 탁계석 詩, 민남일 曲 |
이사온 지 딱 2주가 되는 날이며, 3월의 첫째날이며, 넷으로 나누어 봄으로 넘어가는 날이다. 조금은 편안해지고 이사의 피로도 가셨는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이사하기 한 주 전이었던 지난 2월의 둘째 주에는 학교에서 조그마한 발표회가 있었다. 나는 그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선생님께서는 지난번 공부한 곡을 불러보는게 어떻겠느냐 말씀하셨지만 나는 조금 다른 곡을 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연습했던 곡은 독일어로 된 곡이었다. 난 사람들이 그 곡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뛰어나게 아름다운 멜로디도 아니였으며 더구나 독어라 그 가사조차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 곡을 부르기는 싫었다. 결국에 선택한 곡은 '목련이여'라는 한국 가곡이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옆에서 함께 연주하는 듯한 피아노 반주로 처음 들었을 때 내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켰던 곡이다. 한글 시에 멜로디를 붙인 가곡인데 시 자체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곡을 부르기로 결정했다.
사실 두 곡 중 어느 쪽이 내게 더 큰 의미를 가지느냐 물으면 당연히 독일 곡이다. 이미 그 곡은 곡 자체의 멜로디와 가사를 넘어서서 그동안 그 곡을 연습해오고, 또 무대에 올랐던 그 수많은 시간과 감정, 기억의 총집합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존의 곡에 이와 같은 개인적 의미를 두는 것을 노래하는 사람으로써 매우 경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한 곡의 노래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 깊이는 무한할지도 모르나 그 방향은 일직선에 가깝다는 의미에서 제한적이다. 더구나 그 방향이라는 것은 곡의 분위기와 멜로디, 가사의 의미 따위로 이미 정해지고 주어져 있는 것이다. 노래하는 이는 전달하는 이다. 방향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얼마나 멀리, 얼마나 깊은 곳으로 이끌고 들어갈 것인지가 노래하는 이의 역량에 달렸다. 그렇기에 부르는 노래에 자신이 가진 조금 다른 방향의 감정을 녹여낸다는 것은 굳이 그러할 필요없는 무의미한 것이며 그 곡으로는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혼자 있을 때면 줄기차게 음악을 틀어놓는다. 시간을 가지고 가만히 집중해서 들을 때는 미리 선별해둔 곡을 듣지만 그렇지 않은 때에는 아직 모르는 곡들을 재생 목록에 왕창 추가해서 그저 재생시켜 둔다. 곡을 틀어둔 채 청소를 하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다른 곡의 악보를 보기도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귀에 꽂히는 곡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만히 집중하지 않아도 그건 그저 내게 불현듯 다가온다. 난 그러한 곡들을 기록해두며 소중히 한다. 앞으로 내가 부를 곡은 그러한 곡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처럼 강하게 꽂히는 곡이 아니더라도 여러번 듣고, 또 악보를 뽑아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하다보면 아름답고 좋은 곡이였구나 느껴질 때가 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이다. 내가 가정하는 관객은 한 번도 그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혹은 노래를 듣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다.
노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나 이미 그 곡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떻든지 그 노래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은 굳이 아름다운 곡을 소개하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아름다운 곡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내가 집중하는 이들은 내가 부르고자 하는 노래를 잘 모르는, 혹은 이러한 부류의 곡들을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다. 그들과 나는 내가 음악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많은 부분에서 느끼고 이해하는 바가 상이하다. 그렇기에 나는 모르는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나마 그것이 내가 그들과 가장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한때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목련이여'를 선택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다. 가사를 눈으로 보지 않은 채 그저 흘려들어도 어느새 가까이 다가오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진 곡. 곡의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곡. 그렇기에 난 이 곡을 선택했다.
노래의 아름다움은 분명 멜로디가 전부가 아니며 그 곡의 가사 등 많은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사의 의미를 읽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과 같은 더 큰 감동은 멜로디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그다음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이미 뚫려있는 귀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것 따위를 넘어서는 능동적인 행위이며 이미 나의 손을 떠난 그 후의 일이다. 취향의 문제이며 탐닉하여 좇는 이만이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기를 마련하고 물꼬를 트는 것이며 그 후는 듣는 이의 몫이다. 그렇기에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는 처음 들었을 때에 아름다운 곡이며 잘 몰라도 성큼 다가오는 곡이며 아주 쉽게 함께할 수 있는 곡이다. 나는 그러한 곡을 잘 부르고, 그러한 곡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고 싶다. 언제 또 바뀔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노래에 관한 지금의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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