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기보다는 미처 알 수 없는 모습들을 그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떠한 형태로든 기척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당신은 그러한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될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게 뭔지도 잘 모르겠으나 그랬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 나는 마침내 여행의 채비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0에서 0으로 언제나 0의 중심에서 0을 바라보는. 마치 무한적 소급과 같은... 많은 시간이 흘렀고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거처 또한 옮겨다녔지만 나는 놀랄 만큼 그대로다. 익숙했던 가벼움은 곧 날아가 버릴 것이라 여겼지만 이토록 고요했던 적은 없었다. 얼굴만을 내놓은 가벼운 수면 위로 잔잔한 파문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