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름을 가진 학교에 나간지도 벌써 2주 째 되는 주말이다. 절기상으론 춘분이 다가오고 있다지만 날은 여전히 차다. 때를 놓쳤던 이사의 피로는 생각보다도 길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정들과 함께 내키지 않는 시간들도 많았다. 지나온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해명에 가까운 말하기가 대부분이었고 큰 거부감은 없었지만 반복할수록 무미건조했다. 말을 아꼈던 적은 있었지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여 거짓을 말했던 적은 없었다.
함께한 시간에 비해 사람들과는 많이 가까워졌다. 다른 것보다도 착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으며 착한 사람을 우대하는 나로써는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홀로 연습실에 들어설 때면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힘들것이라 여겼으나 그곳엔 항상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다. 선후배간의 인사는 별 대수롭지 않았으나 연습실을 오가며 나누는 인사는 예전 어릴적 아파트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최소한의 것이라 여기며 행했던 것들로 인해 사람들과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며칠전에는 다함께 연주회를 다녀왔다. 프로그램 중 마음에 꼭 드는 곡이 하나 있었다. 나는 잠시간 떠올라 유영하듯 빠져들었다. 순간 음악을 하는 이들과 여기 바로 함께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는 생각에 나른한 우울을 느꼈다. 떠났던 지난 순간들이 떠올랐다. 뒤척이며 애써 뒤조차 돌아보지 않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 또다시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는 생각에 숨겨지지 않을 조금의 화도 났다. 결국 밖으로 떨어지듯 나와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뱉어봤지만 가벼워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은 한나절을 연습실에 쳐박혀 있었다. 테니스장에서 온종일을 보내던 마치 그때처럼 시간을 보냈다. 잔인하게도 달라지거나 늦춰지는 것은 어차피 없었지만 말이다. 언젠가부터 마음에 드는 벤치 사진을 찍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의자에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함께 앉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어느 때이든 어느 곳이든 별로 중요치 않다고 여겼다. 너무도 오래토록 바라고 오래전부터 깨달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밤낮의 역전처럼 찾아오는 마치 역마살을 닮은 이 운(運)은 도대체가 뭔지 모르겠다. 오래된 시간이 만들어낸 고유의 성격인걸까? 옆에서 잡아주는 이가 없다면 파란만장한 삶을 살거라던 예전 검사지들의 결과가 떠오른다.
글쎄, 라는 말을 되풀이 하는 요즘. 크게 보면 변한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많은 것들이 변화한 일상들. 삶은 계속 나아져야만 하고 나아질 수 있다던 한 드라마의 대사가 떠오른다. 어쩌면 이곳에서 처음으로 소속감이란걸 느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조심스런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