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선택한 건 빈도에서의 우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번, 단순 암기를 제외하고는 투자하는 시간과 그 결과가 그리 큰 연관성이 없다는 걸 크게 깨달았고 그 뒤로는 억지로 무언갈 하려고 했던 적이 드물었던 것 같다. 여기에는 개인차가 클 지도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공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일들에 대한 관심은 마치 일정한 주기를 가진듯 순환하며 돌아왔다. 그랬기에 나는 조금 다른 의미로 항상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언제 불어올 지 모를 바람을 위해 항상 연과 실타래를, 언제 들어올 지 모를 밀물을 위해 항상 배를 준비해 두었다. 그리하여 시를 읽고 싶을 때면 왠지 끌려 사두었던 시집을 펼쳐 들었고,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면 곡이 마음에 들어 악보를 뽑아두었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공부'라 불리는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을 때면 교재를 펴 들었고 전공서를 읽고 싶을 때면 침대 밑 처박아 두었던 책을 꺼내 먼지를 털었다. 그 외 모든 일들이 다르지 않았다.
태양계에는 지구를 포함한 8개의 행성이 태양의 주위를 각기 다른 주기로 공전하고 있다. 그 주기가 가장 짧은 수성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에 88일이 걸리고 명왕성은 248년이란 아득한 시간이 걸린다. 내게는 음악이 마치 수성과도 같은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음악을 듣고 싶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 덕택에 집안은 온갖 짐으로 가득 차 있다. 뜬금 없어 보이는 책들도 창고에 처박아 두는 한이 있더라도 버리지는 않는다. 얼마의 시간을 지나 돌아올 지 모를 일이다. 처음에는 무모하다 여기며 한번 해보자는 식이었지만 6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 볼 때 그 효율은 생각보다 훨씬 높은 것이었다. 행성이 태양의 눈과 마주치는 것은 248년의 주기일지라도 모든 행성은 연속하여 이동하며 또 성숙해 가고 있었다. 때로는 마치 운석의 충돌과 같은 일들로 공전의 궤도와 주기, 나아가 존재의 유무까지 뒤바뀔 수 있겠지만 그때는 또 그 길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마음 편한 길이었고, 또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