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과 적응은 투지와 인내가 행동으로 발현되었을 때 나타나는 양상이겠다. 이는 일반적으로 감내했다는 그 자체로 어느 정도의 숭고함을 담고 있다. 그러나 내겐 그리 좋은 느낌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내겐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부산이 고향인 나는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며 자연스레 자취를 하게 됐다. 자취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혼자 밥먹는 일이 많아졌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혼자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종종 밖에서 혼자 밥을 먹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짝을 이루어 온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이 불편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딱히 없었다. 나 혼자 혼자 왔구나, 돌림노래 같은 생각이 잠깐 스칠뿐 다시금 밥을 먹을 뿐이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드는 생각이 있다. '난 혼자서도 밥을 참 잘 먹구나'. 그리고 어김없이 뒤따라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처음으로 혼자 밥을 사먹던 중학교 1학년의 어느 하루가 떠오른다.
중학생 때는 외국어 배우는 것이 재밌어 학교가 끝나면 날이 저물 때까지 어학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좋아하는 것을 맘껏 배울 수 있다는 것에 모든 것이 좋았지만 한 가지 애로사항이라면 혼자서 저녁을 해결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열네 살 멋모르던 아이에게는 꽤 큰 문제였다. 처음의 몇 달간은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혹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한 입의 삼각김밥과 얼큰한 육개장 사발면은 별미와도 같았다. 당시 학원이 있던 건물의 지하1층에는 기사식당과 같은 큰 음식점이 있었다. 그러나 어린 나는 겉에 쓰여진 메뉴만 흘깃흘깃 보고 지날 뿐 차마 들어가지는 못했다. 혼자 밥먹는 나를 모두가 이상하게 쳐다볼 것만 같았다. 그렇게 또 얼마간 편의점, 편의점, 편의점. 부모님께는 괜히 걱정할까봐 근처 식당에서 밥을 잘 사먹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운동이라도 하고 온 날이면 그것으론 부족했고 삼각김밥과 컵라면이 점점 물리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어린 나는 '이대로는 안돼' 하며 꽤 심각하게 고민한 것 같다.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유리창 너머로 식당 안을 살피며 입구에서 어슬렁거리기를 몇 번, 드디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불편함은 뭔지. 고작 식당인데 뭐가 그리 생소하고 어색한지. 앉아있는 의자, 테이블, 그릇 부딪히는 소리, 음식 냄새, 밝은 형광등 그 모든 게 다 불편하다. 결국 내가 주문한 건지 기억도 안 나는 달걀 덮은 김치볶음밥을 허겁지겁 먹고 도망치듯 나왔다. 그 길로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 앞에 잠시간 숨을 골랐다. 거울안의 나를 보며 잠깐 무슨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 뒤로 그 식당에는 가지 않았다. 영어학원은 중학교 3학년까지 다녔으나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식당에 가지 않았다. 혼자 밥을 사먹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금 혼자 밥을 사먹게 된 건 대학교에 와서 였다. 중학생 시절 단 한 번 혼자 밥 사먹은 것이 전부인데 이상하게도 이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항상 그래왔다는 듯 천연덕스럽기까지 했다. 어쩌면 어린 날의 느낌과 인상들이 너무나도 강렬한 악몽처럼 새겨져 당시의 기억을 몇 번이나 떠올리고 또 곱씹었기에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건 경험하지 말았어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엔 딱히 누구의 잘못도 없다. 그렇다고 성장통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적합한 걸 고르자면 '이상한 시대' 정도일 것이다. 그렇기에 요즘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참 씁쓸하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가 아닌 그 당시가 자꾸만 떠올라 씁쓸하다. 전혀 어색하지도 않고 밥이 맛있기만 할 때면 더욱 씁쓸하다. 마치 예전 중학생 그 아이를 재물로 희생시킨 것만 같아 미안하다. 혼자 밥을 자주 먹다 보니 혼자 밥 먹으러 온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띈다. 그럴 때면 혼자 상상해 본다. 저 사람은 지금 왜 혼자 밥을 먹고 있을까. 저 사람은 처음으로 혼자 밥을 사먹던 날 어땠을까. 이제는 혼자 밥 먹는 게 아무렇지 않은 걸까. 익숙해지고 적응하고 달라진 것일까. 그것으로 된 걸까? 뭐 그런 생각들과 함께 밥을 떠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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