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 강영균, 1979
'늙으면 애가 된다'라는 말을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글쎄, 저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예전, 아마도 하얀거탑이라는 제목의 드라마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어떤 사람이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이끌며 애 타이르듯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의사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것이 애 같다고 하여 정신까지 애인 것은 아니다라고 그 사람을 호되게 야단쳤다. '늙으면 애가 된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노인들은 나이를 먹어감에 더욱 고집이 세지고 더이상 자신의 감정을 감추거나 다스리지 못한다. 그러한 것은 애들이 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늙으면 애가 된다'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이번 학기 들어 유독 특이한 수업이 있다. 특이하다고 표현한 것은 다른 수업과 달리 무엇을 할 지 예상하기 힘든 수업이기 때문이다. 그 수업의 담당 교수가 수업과 강연에서 가장 많이 말한 단어는 아마도 '방황'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이는 무척이나 나를 괴롭혔다. 나는 '방황'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울컥했다. 그때마다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삼켜야했다. 두세 시간 되는 시간 동안 몇 차례 그러다보면 진이 다 빠졌다. 삼킨 것들에 심장은 불어 터졌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매순간 숨쉴 때 메스꺼움을 느꼈다.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향기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갔듯 나는 방황이라는 단어에서 다년간의 헤맴으로 다시금 돌아갔다. 눈물이 났고 밖으로든 안으로든 흘려보내야만 했다. 집약된 경험과 감정이란 한순간의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노인에 대한 생각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고작 몇 년간의 경험과 감정 역시 이토록 주체할 수 없는 것인데 수십 년 동안의 것은 어떠할까.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여러 상황들은 그들에게는 그 순간의 것이 아닌 집약된 어떠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반응은 순간의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닌 집약된 어떠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 순간의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은 결국 우리에게 표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이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다. 노인은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 아니다. 되려 그 반대다. 그렇기에 '늙으면 애가 된다'라는 말은 허무맹랑하게 들릴 뿐이다.
이미지 출처 : http://arts.sear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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