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를 치다 1시에 수업이 있어 부랴부랴 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없다. 의아해하고 있는 내게 동기들이 폰을 확인해보라고 한다. 교수님 사정으로 수업이 30분 지연된다는 문자가 와 있다. 언제나 그렇듯 맨 뒷자리에 짐을 풀고 앉는다. 옆에 난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앞으로 창가의 블라인드들이 바람에 흔들려 춤을 춘다. 그들의 움직임에서 거리낌 없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어렸을 적 딱히 나무에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을 따라 등산을 가면 사람들은 저마다 이 나무가 예쁘다, 저 나무가 예쁘다 말을 했지만 와닿지 않았다. 딱히 예쁘거나 멋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반했던 나무가 있다. 어느날, 달리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춰섰다. 그때 맞은편 길가에 서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나뭇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 나무의 이름은 버드나무였다. 그 이후로 사람들에게 버드나무 얘기를 곧잘 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버드나무를 축 쳐진 나무로 기억했다. 그들의 버드나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그들의 버드나무에 바람을 불어넣고는 했다.
당시만 해도 버드나무가 왜 그렇게 좋은 지 스스로도 잘 몰랐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모습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얼마전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에 어린 나를 홀렸던 것은 버드나무가 아니라 바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버드나무를 통해 처음으로 바람을 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이후로 바람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바람개비, 창문의 커튼, 풍경風磬 , 흩날리는 모든 것들. 그들은 나의 세계에서 빛을 발했다. 그러자 바람은 더욱 자주, 그리고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더이상 불어오는 바람을 직접 몸으로 맞지 않아도 바람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휘날리는 깃발, 흔들리는 커튼, 울려퍼지는 풍경風磬 소리. 보는 것만으로도, 듣는 것만으로도 바람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다. 바람이 부러웠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스스로를 꾸미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지나는 길에서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차茶를 아직 잘 모르나 사람들이 말하는 차茶의 은은한 맛과 향은 내가 느끼는 바람의 은은함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창 바람에 관심이 많았을 때 써둔 글이 있어 가져왔다.
2012.02.03
언제까지나 바람이 불까
그래서 언제까지나 연을 띄울 수 있을까
그것은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불어온다
아무 때나 찾아와서는 나를 데려간다
교실 창가로 와서는 그 너머로 나를 데려간다
때로는 무엇인가를 가져와 자랑하듯 펼쳐보인다
꽃의 향기를, 비를, 부서지는 낙엽을
그것까지는 괜찮다, 좋다
일상으로부터의 해방,
잊혀졌던 감각들의 생동에 시원하다
그러나, 몸 속 깊이 불어오는 서늘함.
모든 것을 뒤바꿔버리는 잔인함, 새로운 기대 갈망 바람
감히. 허락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잠자는 동안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현상, 꿈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꿈
왜, 대체 왜 이 둘은 같은 단어를 쓰는 건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새로운 기대 갈망 바람
붙잡으려 뻗을수록 허공으로 흩어진다
무심한듯 스치듯이 불어왔던 것은 계략
불어온 바람에 연을 띄우기 위한 끝없는 몸부림
연은 쉽사리 뜨지 않고 불평의 화살은 바람에게
'애초에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시간이 흐르고 잦아드는 바람, 바랐던 일. 그러나
'또다시 바람이 불어올까......'
에헤라디야 바람분다 연을 날려보자
하늘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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