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 . .
그녀가 묻는다.
'xx씨는 누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나요?'
그가 답한다.
'지금 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말하는 건가요?'
'네'
'제 책임이죠. 100%'
'아, 그래요?'
'네'
'그런데 xx씨가 말하길 부모님 탓을 하는 점도 분명 있다고 하질 않았나요?'
'그건 조금 다른 차원의 얘기죠.'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요?'
'부모님 탓을 하는 건, 그 당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줬다면 이러한 갈등이 시작되지도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애초에 없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죠. 100% 제 책임이라는 것은 갈등이 시작된 후로부터 지금까지 상황을 이끌어오는 데의 선택과 행동은 모두 제 몫이었으니 100% 제 책임이라고 말하는 거죠.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선택과 행동을 한 것은 xx씨이기에 결국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면서 갈등이 시작된 것에 대해서는 부모님의 탓도 있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잘 안 되네요. 두 가지가 다른 건가요?'
'A와 B 두 사람이 있어요. A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B가 위험하다며 말렸죠. 두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심하게 다투게 되었어요. 그 뒤로 A와 B 두 사람의 사이는 멀어졌죠.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A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싸우고 난 뒤 내가 잘못했다며 먼저 사과하고 화해를 청했다면 지금처럼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난 왜 먼저 사과하지 못했을까' 그러나 또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때 B가 그렇게 완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싸움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는 알겠어요. 알겠는데...'
'두 시점으로 나눠볼 수 있겠죠. '갈등이 일어나기까지'와 '갈등이 발생한 후'로. '갈등이 일어나기까지'에 '갈등'이 포함돼 있어요. 갈등이 발생한 후로부터 지금까지 전 여전히 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그렇기에 진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이에 대해 100% 제 책임이라고 말하는 거고, 갈등이 일어나기까지에 대해서는 분명 부모님의 탓이 있다는 거죠. 여기에는 명백하게 부모님의 의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제 의지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기에 책임의 소재를 따져본다면 50:50이 되겠죠.
'네...'
'......'
'......'
'이를 말하면 왜 이와 같이 두 시점으로 나눠 말하는 지 조금 더 잘 이해가 될 것 같네요. '통제감'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주어진 상황을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것. 전 이를 매우 중시해요. 거의 모든 상황을 제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어요. 설사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렇게 생각해야 노력이란 걸 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도 100% 저에게 돌려요. 잘 된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그런데 위에서 말한 '갈등의 발생'에 대해서는 100% 제 책임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고 싶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니 100% 제 책임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50:50이라고 말한 거구요. 그리고 갈등이 발생된 후로부터 지금까지는 다시 100% 제 책임이라고 생각하죠. 그렇기에 저와 같이 두 시점으로 나눠 말한 거죠.
'네, 알 것 같아요'
'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xx씨의 탓이라고 하는 거죠?'
'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xx씨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거나 부모님께서 지지해주시면 해결될 텐데,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죠?'
'네.(웃음)'
'지금도 부모님께서는 반대하시는 입장이고......'
'제가 생각하기에 해결방법은 단 하나예요. 부모님께 지금까지의 제 모든 생각과 감정들을 말하는 거죠. 뭐 물론 이를 말한다고 하여 100% 해결될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어요.
'네, 그렇게 하면 분명 어떠한 변화는 있을 거라 생각해요'
'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나요?'
'말할 수 없어요'
'왜죠?'
'예전에 아마도 제가 중학생 때인가 '황진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어요. 하지원이 주연으로 나왔던. 아세요?'
'네, 알아요. 하지원이 주연이었던가요'
'거기에서 하지원의 스승 기억하세요?'
'김영애씨 였던 가요?'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맞는 것 같네요'
'네, 그래서 그 드라마는 왜?'
'황진이의 스승이 황진이이게 학춤을 전수해주죠. 그런데 이때 두 사람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어요. 자신의 부모 문제 때문인가 황진이가 그의 스승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죠.'
'네'
'황진이의 스승은 일생을 춤에 바쳐왔다고도 말할 수 있죠. 그리고 학춤은 그러한 그녀의 일생을 증명하는 것이었어요. 그 학춤을 황진이에게 전수해주죠. 학춤에 대한 그녀의 자부심은 대단했어요. 마침내 황진이는 그 학춤을 완벽하게 익혔고, 전수받은 학춤을 멋지게 그녀의 스승에게 보입니다. 스승은 매우 뿌듯해했죠.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황진이는 그녀의 스승이 전수해준 것과는 다른 자신만의 학춤을 춰보입니다. 그 학춤은 매우 아름다웠고 그녀의 스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죠. 그때 황진이가 스승에게 쏘아붙입니다. 당신의 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형편없다고, 진짜 학춤은 이런 거라고. 황진이의 스승은 얼어붙은 채 말을 잊지 못했어요. 얼마뒤 그 스승은 한 절벽의 위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학춤을 한 번 춘 뒤 그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합니다. 전 이 장면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고, 그 뒤로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건드리는 말은 잘 하지 못하죠. 차라리 입을 다물죠.'
'xx씨의 얘기가 부모님의 가치관을 건드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어느 쪽이든 틀린 것은 없죠. 부모님도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것 뿐이죠. 차라리 틀린 것이 있다면 이를 바로 잡기란 쉬운데. 그저 다를 뿐이죠'
'네'
'당시 황진이가 했던 말이 스승에게는 '당신이 일생동안 쌓아오고 믿어왔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형편없다고, 가짜였다고' 이렇게 들렸을 지도 모르죠. 전 그와 같은 말은 할 수가 없네요.'
'그러면 결국 혼자 다 안고 가겠다는 건가요?'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건 스스로에게 너무 힘든 것 아닌가요? 그렇게 할 수 있나요?'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이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 외에 딱히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가 않네요.'
'저 역시도 지금 당장에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네요'
'......(웃음)'
'......'
. . . . . . . . . . . . . . . . . .
'편지 > 쓰고싶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들의 죽음에 아무런 느낌이 없다 (2) | 2012.09.08 |
---|---|
버려진 뜰, 그리고 숲 (0) | 2012.08.20 |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행동하는 자신 (0) | 2012.08.04 |
언젠가 잃어버렸던 나의 삶을 되찾았다 (0) | 2012.07.29 |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나는 누구인가 (4) | 2012.06.20 |
드라마의 결말 (0) | 2012.06.20 |
늙으면 애가 된다는 것은 (1) | 2012.06.04 |
conversation #991 (0) | 2012.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