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자전거는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에도 좋다. 그렇게 여느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중랑천을 따라 북쪽으로, 방향만이 있을 뿐 목적지 없이 달렸다. 당시에 전공 문제로 매일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교육을 받고 있었기에 자정이 넘어서야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평일 자정이 넘어간 시간의 중랑천은 한산했다. 사람도 없겠다 핸들에서 두 손을 놓은 체 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그렇게 20여 분쯤 달렸을까. 눈 앞에 짙은 안개가 깔려 있다. 길과 풀과 나무들은 안개 속으로 묻히고 가로등 불빛만이 어슴푸레 번지고 있다. '저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안개를 향해 달렸다. 얼마나 짙은 안개였는지 그 속으로 들어가자 주위 모든 것들이 희미해진다. 모든 것의 형태가 무너지고 나는 시력을 잃는다. 양팔을 뻗고 고개를 쳐든 체 눈을 감는다. 낯설지 않고 포근하다. 떠나온 곳에 돌아온 듯 아련하다. 안개는 소리마저 멎게 했다. 바퀴는 굴러가고 있는지 아니면 흘러가고 있는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멎어버린 그 곳에서 그렇게 유영을 했다.
이 같은 경험 때문일까. 그 후로 마지막 순간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면. 나에 대한 사람들의 모든 기억이 애초에 없었던 걸로 된다면. 담배연기로 만든 도너츠가 솨하- 피어올라 사라지듯 증발해버릴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때 안개 속에서 느꼈던 포근함과 아련함, 해방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지막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늘, 그 안개가 그리웠다. 장소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았다. 애초에 그건 땅에 박힌 장소가 아니었기에. 그럼에도 어디였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오늘도 그곳에는 안개가 끼어있었다. 그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옅은 안개가 서려있었다. 안개를 담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저 속에서 나는 이렇게 느꼈노라 말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안개는 잘 담기지 않았다. 자전거를 세우고 한참을 서 있으니 그 옆으로 지하철이 지나간다. 번지는 조명과 그 아래 어둑한 길, 가만히 서서 응시하는 나. 그 옆으로 빛을 내며 달리는 지하철. '저 열차는 시간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상행선 열차는 미래로 하행선 열차는 과거로 달린다. 그들을 쫓아가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만나지 않은 것들과 이미 떠나온 곳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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