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김윤아의 노래만 들었던 적이 있다. 그녀의 노래는 습하고 텁텁했다. 그것들을 오늘의 유일한 식량처럼 빨아마시곤 했다. 끊기지 않는 그녀의 노래는 잠들지 못하는 내게 자장가가 됐다. 하루는 날이 저문 채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꿈을 꾼 것 같다. 잠든 것이 아님에도 꿈을 꿨다. 술을 마신 것이 아님에도 몽롱해졌다. 꿈속에서는 그녀의 정원이 보였다. 그곳은 초라했다. 식어버린 열정에 메마른 풀과 잡초, 가지들. 찢겨진 나비의 날개와도 같은 말라빠진 꽃잎들. 닳고 닳아 균열로 가득한 담벼락. 아스라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풍경. 희망처럼 비춰오는 햇살은 풍경의 색을 옅게 하여 한층 건조함을 더할 뿐이었다. 냄새도 소리도 색깔도 없는, 잃어버린, 정원, 뒤뜰. 그럼에도 난 그녀의 정원을 동경했다. 왜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정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노래처럼 버려진 뜰에도 나비는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안고 살아가는 그녀를 닮고 싶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에게도 반드시 나비가 찾아올 것이라 기대하며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뒤뜰과 정원에 대한 생각은 숲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내게 숲이란 경외의 대상과도 같았다. 예전 고향에 있을 때 답답할 때면 혼자 산을 올랐다. 겨울에는 해가 일찍 저물었다. 오후 서너 시가 되어 산을 오르면 하산할 때 주위가 어두웠다. 그것은 낮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낮의 한적함은 날이 선 정적이 되어 달려들었으며 우거진 수풀들은 검게 탄 장막이 되어 겹겹이 쌓였다. 낯설은 그 모습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야만 했다. 시간과 계절에 모습을 달리한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숲은 시간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것은 들어온 모든 것의 시간을 앗아버렸다. 그의 앞에 감히 시간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숲이란 오래된 존재였다. 그렇기에 숲에서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모든 것은 존재의 의미만으로 충분했다. 이와 같은 것들로부터 숲이란 참 큰 존재임을 느꼈다. 동경하며 동시에 두려워한다. 지금도 여전히 숲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설 때면 긴장을 한다. 그리고 숲을 빠져나올 때면 홀가분하며 유쾌하다. 나는 이러한 숲을 닮은 사람이고 싶다. 이번 겨울에는 인제와 횡성의 자작나무 숲을 꼭 찾아가볼 것이다. 그들을 마음속으로만 너무 오랜 시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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