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 휴가 나온 B와 치킨에 소맥을 말았다. 대화 중 영화 '은교' 얘기가 나왔다. 둘 다 시를 즐기는지라 주제는 자연스레 '시인'으로 넘어갔다. 시인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고있자니 김무열이 연기한 극중 서지우와 B가 오버랩되었다. B는 시인의 시점·관점을 동경했다. 새로 산 스마트폰의 배경을 은교로 해 놓은 것으로 보아 단순히 시인의 능력을 넘어 시인의 삶 자체를 동경하는듯 했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러한 시인의 삶을 살고 싶으나 이는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 시인은 타고난 자였고 시인의 시는 그러한 타고난 능력과 영감에 의해 완성된 것이었다. 이는 극중 서지우의 생각과 매우 비슷하다. 나의 생각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모든 시인의 노트는 매우 지저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쓰기'와 '고쳐쓰기'일 것이다. 내게 시인이란 어휘에 미치도록 집착하는 자들이다. 물론 그들은 다른 이들보다 감수성이 예민하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하여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민한 감수성은 그저 세상을 지각하는 능력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받아들인 것을 어떻게 표출하느냐이다.
언어란 본디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어쩌면 본디부터 존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사용하기 이전에 그것은 언어가 아니다. 들에 널려있는 돌로 사냥을 함에 따라 그 돌이 무기가 되었듯이 인간이 사용하기 이전에 '그것'은 언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란 인간의 도구다. 그리고 시인은 언어란 도구 사용에 숙련된 이들이다. 도구의 사전적 정의보다 한자 뜻을 그대로 풀이해보면 재밌는 정의가 나온다. 길 도(道)에 갖출 구(具), 도구(道具). 즉 길을 갖춘다는 뜻이다. 이를 시에 적용시켜보면, 시란 시인이 받아들인 '어떤 것'으로 향하는 길이며 통로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가면 시인이 받아들인 것을 다른 이들 또한 만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처럼 소통이라는 것에 중점을 둘 때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예민한 감수성보다는 숙련된 언어능력이다. 그리고 감수성에 비해 언어능력은 선척적인 것보다 노력에 의해 개발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인이란 노력에 의해서 탄생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과 함께 그들의 노력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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