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이면 테니스 게임을 한다. 그리고 게임이 끝날 오후 9시 반쯤 약속이라도 한 듯 다함께 술을 마시러 간다. 교수도 직장인도 학생도 모두 다함께. 교수와 직장인에 대한 편견이 깨진다. 뭐 사실 편견은 애초에 없었다. 새로운 모습을 볼 뿐. 그러한 모습들은 내게 달콤한 안주가 되고 술마저 달콤해진다. 혼자 마실 때는 세 모금만 마셔도 쓴 맥주가 대여섯잔 마셔도 달콤할 뿐이다. 즐겁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즐겁다. 몇 안 되는 유쾌한 술자리 중 하나다. 한 번도 돈을 내 본 적이 없으나 혹시나 그들이 부담을 느껴 이 자리에 부담을 가질까봐 더치페이를 해서라도 유지하고 싶은 자리다. 그러나 나는 쉽게 내 얘기를 하지 않는다. 버릇이 된 걸까. 단 둘이 있을 때는 말하기 쉬우나 여럿이 모였을 때는 그렇게도 말하는 것이 어렵다.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다. 고등학생 시절 봉사활동에서 생긴 버릇이 여전히 남아있다. 마주한 A를 고려한 말하기는 그래도 할 수 있으나, A, B, C, D.. 동시에 여럿을 고려한 말하기란 내게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은 말하기란 이제 더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금요일 밤의 이 술자리에 더이상 끼지 않으려 한다. 항상 술자리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다. 많은 경우 나 혼자 제정신으로. 오늘 한 누나가 농담하듯이 말한다. '너와 술 마실때는 조심해야겠어' 금요일 이 시간의 술자리가 조금이라도 조심해야하는 자리가 아니길 바란다. 그렇기에 난 더이상 그 시간에 함께 하지 않겠다. 아쉬우나 이렇게 선택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나는 더 편해진다. 그 시간의 그 자리가 계속 유쾌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의 숨소리는 거칠다. 내일 봉사활동이 있기에 정신을 차리기 힘듦에도 재첩국을 끓이고 밥을 말아서 숟가락으로 떠먹고 있다. 내일 깨어났을 때는 숨소리가 거칠지 않기를. 머리가 아프지 않기를. 그래서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에게서 실망했다고 하여 새로이 만난 이에게 기대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듯 오늘의 술자리가 내일 만날 이들에게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이제 곧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달달한 꿈을 꿨으면. 나쁜 꿈을 꿔 몇시간 자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 해가 뜰 때까지 두려움에 떨지 않기를. 상쾌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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