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까지 테니스를 치고 자전거에 올라 쪽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간다. 쪽문은 골목길로 시작해 골목길로 끝난다. 사람이 나올까 주의하며 자전거를 천천히 굴린다. 여느때처럼 그렇게 가다보니 앞서서 걸어가고 있는 한 여자가 보인다. 해는 저물고 골목에서의 어둠은 더욱 짙다. 가로등 아래 비친 그녀의 모습은 실루엣에 가깝다. 스치듯 봤을 뿐인데 그녀가 걸어가며 생각에 잠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느낌을 받은 것이 신기했다. 갈 길이 나뉘어질 때까지 천천히 자전거를 굴리며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봤다. 마음 같아선 카메라에 담고 싶었으나 주변환경과 흉흉한 세상 때문에 포기했다. 무엇이 내게 그녀가 생각에 잠겨있다고 말해주는 것일까. 천천히, 그러나 조심스럽지는 않은 툭툭 내던지는 걸음걸이, 발을 내딛음과 함께 내쉬는 큰 숨들, 그로 인해 젖혀지고 숙여지는 것을 반복하는 머리, 늘어뜨린 팔.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의 뒷모습. 아마도 그러한 모습에 그녀는 생각에 잠겨있다 생각했으리라. 그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자취만 벌써 사 년째다.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은 일상이다. 그런데 빨래를 널거나 갤 때에, 설거지를 할 때에 평소보다 생각이 잘 된다. 아이디어 또한 잘 떠오른다. 딱히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해야겠다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샌가 생각을 하고 있다. 이는 걷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굳이 표현한다면, 독립한 육체와 그로 인해 해방된 정신?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육체로부터의 해방이 아닌가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은 가만히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가만히 있다는 게 뭔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이 있을까. 그에 반해 빨래를 널고 개고, 설거지를 하고 길을 걸어가는 것은 권태를 느낄 만큼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이다. 숙달된 조교의 시범처럼 숙달된 것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서 뇌만을 분리하여 영양을 공급하는 이야기. 마치 그에 가까운 상태.
아마도 대학 1학년 때 한자 수업 시간. 아니면 노장 사상을 다룬 책에서, 길 도(道) 자가 나왔다. 교수님 혹은 책이 이르길, 이는 쉬엄쉬엄 갈 착(辶) 과 머리 수(首) 자가 합쳐진 글자이니라. 즉, 도道라는 것은 길을 걸어가며 생각한다는 것이다. 당시는 재밌는 풀이라 치부하고 넘겨버렸으나 지금에는 참으로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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