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자전거로 통학한다. 지금 자취하는 원룸에서 학교까지는 느긋하게 걸으면 15-20분, 빠르게 걸으면 10분 정도. 그리고 자전거로는 5분쯤 걸린다. 수업 들어가기 전 낮잠을 자다 10분 전에 깨도 자전거와 함께라면 출석은 문제없다. 방어율 100%. 사람이 적은 쪽문과 후문으로 다녀서 그런지 자전거로 통학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들 두발로 걸어서 학교를 간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다보면 가끔 망상에 빠진다. 아무래도 걷는 속도보다 자전거의 속도가 빠르다보니 학교를 가며 10-15명 정도의 사람들을 제치게 된다. 그럴 때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내 앞으로 분주히 걸어가고 있는 학생들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의 시계가 보인다. xx시 xx분에 출발하여 xx시 xx분에 교실에 도착할 사람. yy시 yy분에 출발하여 yy시 yy분에 교실에 도착할 사람. 마치 네이버 지도에서 '출발지'와 '도착지'를 클릭하면 그 길에 색이 입혀지고 소요 시간이 뜨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그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을 제칠 때면 마치 그들의 시공간 지도에 들어가 속력을 내어 소요 시간을 단축시켜 도착 시간을 앞당긴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렇게 10명 가량 제치며 제칠 때마다 뒤돌아 그들을 보면 짧은 순간이나마 시간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굉장한 망상인 것 같으나 어찌보면 이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경쟁의식과 같은 맥락인지도 모르겠다. 출세 가도를 달릴 때의 쾌감도 이와 같을 것이다. 같은 길에서 더욱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처럼 같은 나이대에서 더욱 빠른 속도로 승진을 하고 연봉을 올린다. 시간을 거스른다고 생각했던 것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결국 같은 맥락이라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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