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도망치듯 느껴질 때가 있다. 생의 조건 같은 고통마저 돌아가려 할 때가 있다. 특히 감정에 있어선 유독 그랬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려지는 갖갖의 형상들. 짜증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이나 뒤틀린 말투나 삐뚫어진 목소리들. 최선을 다해 그들을 피해 나갔다. 하루의 시작에 깨뜨린 물컵이 온종일 머릿 속을 이지럽히듯 그들과 마주한 날의 기분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때로는 누구와도 마주 않는 시간을 살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살아가는 해답이 될 수 없었다. 군대에서는 특히나 더 그랬다. 어쩔도리가 없었다. 참다가 병을 키우는 쪽이었음에도 더 큰 인내심을 키워야만 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새삼 느꼈다. 그동안 참으로 눈 가리고 아웅 편히 지냈음을. 보기싫은 것들은 어김없이 손바닥으로 가려버리곤 했다. 그럼으로써 그곳에서 벗어나 재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1년여의 시간도 더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듯 했다. 더구나 최근의 출장 근무에서는 좋은 이들과 여럿 어울리게 되었다. 잃었던 신뢰는 나날속에 차츰 제자리를 찾아갔다. 더이상 사로잡힌 감정에 얶매여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았다. 그자리에는 내가 머물 곳이 있었다. 그러던 중 다시금 기억이 떠오른 건 바로 어제였다. 그건 한 사람의 말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제복을 입은 흰 머리가 많은 나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근무가 시작되던 날 저녁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근무가 끝나던 날 아침 갑작스레 소리마저 내질렀다.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었다. 잊고 있었다. 매일밤 머리맡에 모여드는 그림자들. 뱉어도 뱉어지지 않는 질식같던 순간들. 그들이 떠나지 않던 순간들을.
나는 잠을 잔 시간만큼이나 오래토록 불신 당하고 손가락질 당하고 쫓기고 다쳤다. 성추행마저도 당했는데 현실에서는 없는 일들이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몸이 불편할 때도 그랬다. 근육통에 시달리거나 추위에 떨 때, 혹은 좁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잠들 때 어김없이 머리맡은 짙어졌다. 친구와 가족은 내가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이야기 속 나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거의 모든 경우 좋은 쪽을 바라본다. '구름의 흰 가장자리'를 뜻하는 'silver lining'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며, 희망과 가능성이 판가름의 척도이다. 현상에 대해서든 사람에 있어서든 마찬가지다.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자면 고개조차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잠들 수조차 없어 오늘의 끝에 내일을 이어붙일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그러지 않으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비 오던 저녁날 찾은 한 복국 집에서였다. 천장 아래 매달린 정교한 복어 모형이 낯설지 않았다.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내 머릿속과 꼭 닮아 있었다. 복어는 위협을 받으면 순간 몸을 부풀려 가시박힌 공의 모양새가 되곤 했다. 내 속의 녀석도 꼭 저렇게 예민했다. 조그만 낌새에도 잔뜩 가시를 내돋우곤 했다. 한껏 팽창한 몸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도 없었다. 녀석은 하루종일 머릿속을 굴러다니며 이곳저곳을 찔러댔다. 따가움에 눈조차 뜨기 힘들어 약을 찾는 날이 많았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녀석을 잠재우기보다는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나의 도망하는 습관은 그곳으로부터 시작됐다. 최근의 행복한 나날에 잠시 잊고 지낸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금 타성을 깨우는 이들이 나타나고 나는 도망을 궁리한다. 또 하나의 습관이 안타깝게 굳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