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곡성>을 보던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영화 <해무>가 생각났고, 그 오프닝 곡이 떠올랐다. '출항(정재일)'. <X-men>의 'Hope(John Ottman)'이란 곡과 함께 가장 많이 나를 흔들었던 곡이다. 오늘은 그 곡을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개인용 폰 사용이 가능해지며 이렇듯 부대 생활 중 안락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환경에 감사하며 정재일의 또다른 음악은 없나 뒤적거렸다. 처음 보는 앨범들이 있었다. 2017년 10월, 입대 후 발매된 앨범들이 있었다.
<끝내 바다에>란 앨범 커버가 마음에 들었다. <해무>에서의 짜고 피비린내 나는 바다가 마음에 들었고, 그런 바다를 담고 있는 '출항'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또다른 바다를 듣고 싶었다. 장사익이 아닌 처음 보는 소리꾼이었다. '한승석'과 함께 한 앨범이었다. 놀라웠다. 음악보다도 가능성을 듣는 시간이었다. '이것도 가능하구나'란 생각은 모든 곡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하였다. 이번의 바다는 깊은 바다였다. 해수면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바다보다도 시퍼런 바다였다.
'한'의 바다였다. 한승석의 소리는 그 바닷 소리였다. 정재일의 음악은 세련되기도 했고, 그 소리가 가라앉지 않게 계속 움직여주고 있었다. 엄청나게 큰 돌을 집어던졌을 때의 물튀김, 돌이 가라앉으면서 떠오르는 기포들, 그것이 앨범 전반에 깔려 있었다. 깊은 자리를 내주는 만큼 튀어나오는 것이 있었다. 끝없이 무거워지거나 한없이 가벼워지지 않아 긴 시간에도 지치지 않았다. 나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음악의 링크를 걸어줬다.
'상세정보'를 들여다보자 더욱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풍물놀이패를 하다 29살에 판소리를 시작했다는 '한승석'. 지금은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교수로 있다고 한다. 이제 이런 사람도 교수로 받아들이는 세상이 됐구나란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론 나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다시금 반문했다. 때때로 '가능성의 발목을 잡는 것들을 모두 끊어내야하는 걸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 시간 가까이 들은 가능성의 소리에 그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편지 > 쓰고싶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격이 되어버린 2 (0) | 2018.08.27 |
---|---|
다시 사람 (0) | 2018.08.01 |
속삭이는 말 (0) | 2018.05.31 |
속그림자 (0) | 2018.04.29 |
춘몽 (0) | 2018.03.15 |
끝과 시작 6 (0) | 2018.03.10 |
동대문은 신설동의 남쪽 (0) | 2017.08.22 |
편의점 (0) | 2016.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