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마지막날 18호차 객실에는 애틋한 모자(母子)가 있었다.
늘 그렇듯 열차의 구석 모퉁이를 골라 앉은 나는 본의 아니게 그들의 작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처음엔 단순히 함께 열차를 타는가 했다. 이미 부산역 광장에서 남자의 얼굴을 한번 봤던 터라 자꾸만 눈길이 갔다. 나의 앞쪽으로 자리한 두 사람 사이에는 평범하면서도 다가올 헤어짐을 암시하는 말들이 오갔다. '뭐 이렇게 뒤쪽 열차에 자리를 잡았대. 불편하지 않냐', '편하게 가려고 잡은거에요', '마중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잠시뒤 어머니 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노트북 전원도 켜져 그들로 향한 시선을 거두던 참이었다. 출발 시각이 되고 열차의 문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조용한 객실 안으로 남자의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헤어진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 듯 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힐끔 쳐다 본 창 밖에는 여전히 어머니가 아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창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들은 평범하면서도 쉽지 않은 말들을 전했다. '차 조심하고, 계단 조심하세요', '걱정마세요'.
전화가 끊기고 곧이어 열차가 출발했다. 그렇게 빠른 열차도 항상 시작은 기듯이 간다. 18호차 객실의 승객은 단 세 사람 뿐이었다. 삐걱대는 쇳바퀴 소리만이 힘겹게 들려오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바람 소리 같은 말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조심하세요'. 아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풍경같은 어머니를 지나치는 창 뒤로 전화 연결도 끊어진 채로 아들은 말을 건네고 있었다. 가볍고 빠르게 스쳐가버린 그 말이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한참이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멀어진 시야 속에서 다시 한번 통화를 했다. 어쩌면 아들이 조금 멀리 떠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떨어진다는 것 자체가 두 사람에게는 너무도 먼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의 차창 풍경을 지난 후에야 내게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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