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이 있어 건설공학관으로 향한다.
자전거를 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시원했으나 조금 걸었다고 땀이 난다. 여름은 여름인가 보다.
쉬는시간이 되어 바람을 쐬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를 가야할 지 몰랐다.
건물 후문 쪽으로 가자니 공대생들이 담배를 뿜어대고 있고, 정문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서는 바람이 사그라든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쓸어올리지 않고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고는 머리를 정돈한다.
'대체 어디로 가야할까'
그러다 문득, '이 건물에 옥상이 있었지'
옥상으로 가 바람을 맞을 생각에 5층까지 신나게 내달린다.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그곳은 마치 '통로'같다. 마지막 몇 계단을 오르는데 두근거린다.
주황빛의 페인트가 내 심정을 대변한다.
'아 이게 옥상공원이라는 거구나'
몇 번 얘기를 들었지만 직접 와본 적은 없었는데 결국 이끌리듯 오게 되었다.
탁 트인 하늘과 이색異色의 공간에 잠시 현기증이 났다. 눈을 감아야만 했다.
바람이 시원했다.
눈을 떴을 땐 눈앞의 풍경에 풍족함을 느꼈다.
푸른 잎들과 꽃들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옥상공원屋上公園 이라 이름 붙여져있다.
'옥상'을 '하늘'로 '공원公園'을 '정원庭園'으로 바꿔주고 싶다.
바글바글하다.
햇볕이 너무나도 뜨거운 한여름임에도 활짝 핀 꽃들이 많다.
분홍바늘꽃
황금달맞이
향기가 달콤한 지 벌들이 모여든다.
만지면 부서질 것만 같다.
술먹고 뻗어 퍼래졌을 것 같은 이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꽃잎이 정말 술먹고 뻗은 팔다리처럼 보인다.
주위의 삐죽삐죽 튀어나온 건물들의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곳이 옥상이라는 것을 잊었을 것이다.
쭈그리고 앉아 바라보고 있자면 하늘과 꽤 가깝게 느껴진다.
다른 건물의 옥상공원들에 비해 관리가 잘 되고 있음을 느꼈다. 한여름도 잘 견뎌내겠지.
가을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맞아줄 지 기대된다.
지금은 뙤약볕에 오래 머물기 힘들지만 가을이 되고 선선해졌을 때에 옷가지 여미며 벤치에 누워 시집 넘기는 상상을 해본다.
꽃은 지고 없겠으나 그건 그것대로 풍족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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