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원서에 사용할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에 갔다. 그런데 세미나 때문에 휴무라는 쪽지가 붙어있다. 다른 사진관에 가야하건만 김이 새버린 건지 가기 싫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다리를 건너며 중랑천을 내려다봤다. 오늘따라 하천을 따라 흐르는 물이 유독 반짝였다. 저리도 예쁜 걸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카메라를 챙겨 다시금 중랑천으로 나왔다. 하늘이 참 맑다. 비 없는 바람만이 몰아치는 태풍도 하늘을 맑게 만들기는 하나 보다. 오늘은 의정부 방향으로 달렸다. 학교를 다녀온 뒤라서 그런지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중랑천이 이렇게 푸른 잎들로 무성한 곳이었나? 바람 불어올 때마다 잎사귀 비벼대는 소리들이 쓸려지나간다. 생각해보니 참 오랜만의 라이딩이다. 더군다나 이맘때쯤이면 항상 밤에만 주구장창 달렸다. '6, 7, 8월은 밤자전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오늘처럼 이렇게 여름의 막바지 한낮에, 자전거를 끌고 온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달리다보니 하늘과 다리와 강과 풀잎이 너무 예쁘다. 멈춰서서 기록으로 남길 수밖에 없다.
정말 무성하다. 여름의 중랑천의 모습은 이렇듯 무성하구나.
그리고 오늘따라 유독 하늘이 더 맑고 강물도 햇살에 찰랑대기에 자전거를 타면서도 눈길은 강물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갈림길이 나왔다. 사실 이전까지 여기가 갈림길인지도 몰랐다. 해진 후 이 곳은 그저 일방향 자전거 도로이며 좌측에 아파트로 향하는 길처럼 보이는 것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계속 강물을 쳐다보고 있어서일까, 그 갈림길의 왼편 하천에서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며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그 길로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물이 맑다'. 이건 뭐지? 상류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인가 보다. 쫓아가듯 거슬러 올라갔다. 조금뒤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 강한 이질감. 조금 전까지 아파트와 자동차로 가득했던 곳에서 이제는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마치 시골과도 같은 주위 풍경.
오랜만에 보는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다시금 계속 더, 더 위로 올라갔다. 여전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에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흥분된다.
하천과도 같았던 곳이 계곡으로 변해갔다. 나무들이 많아지고 물 흐르는 소리가 커진다. 자전거를 타고 계속 올라간다. 드디어 표지판이 나온다. 아, 북한산이구나. 북한산 물줄기였구나. 조금 더 오르니 아예 차를 타고와 돗자리를 깔고 피서를 즐기는 가족들이 꽤 보인다. 그 옆으로는 멋모르고 흘러들어온, 자전거를 타며 헥헥대고 있는 내가 있다.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계곡으로 놀러오곤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와 같은 곳을 그저 자전거 타고 잠시 나와 도착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웃겼다.
발길을 멈출 수 없어 계속하여 폐달을 밟았다. 이제는 밟을 때마다 삐걱대는 형편없는 자전거이다. 그런 자전거를 가지고 결국 산을 오른다. 하지만 자전거 출입금지라는 안내표시에 마침내 방향을 돌렸다. 그 안내표시가 없었다면 과연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을지 장담할 수 없다.
내가 본 것은 고작 북한산의 동쪽 끝자락이다. 그러나 바로 방금전까지 도심 속에 파묻혀있던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아주 신선하고 벅찬 풍경이었다. 넓게 펼쳐진 논밭과 키 큰 나무들에 시원했다.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논두렁을 따라 걸었다. 반바지를 입고 있어 질긴 풀들에 상처가 났다. 나중에 보니 피도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풍경들에 사로잡혔던지 논두렁을 빠져나와 자전거에 올라탈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동요 속 냇물과도 같은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어내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다음에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이곳으로 와 잠시 머물다 가리라 풍경들에 약속하고 돌아섰다. 자전거를 탈 때면 언제나 그랬듯, 생각지도 못한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뜻밖이었지만 참 괜찮은 피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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