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다. 흔히들 하는 말로, 구력이 2년 정도 된다.
테니스는 대학에 오며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에 온 뒤로 나의 시간은 느-리게 갔다. 크리스마스 양말 주머니에 선물을 넣을 때마다 양말이 쭉쭉 늘어나듯 나는 시간이 기다랗게 늘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꽂을 수 있는 책의 양이 한정된 책장이 아니라 책이 곧 책장이 되는 무한히 확장가능한 공간과 같았다. 시간은 절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당히 상대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대학시절 거대하게 팽창한 공간 중 꽤 많은 부분을 테니스가 차지한다. 대학시절 무엇을 했느냐에 대한 질문의 답에서 테니스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테니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부모님의 추천이다. 대학에 온 이후로 부모님의 권유로 어떤 일을 시작한 것은 테니스가 유일할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운동하는 것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좋아해 지금까지 수영, 탁구, 스쿼시, 스피드 스케이트, 테니스, 그리고 최근의 승마까지 다양한 운동을 배워왔다. 사실 테니스는 고1 때 처음 접했다. 그러나 미처 두 달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둘 만큼 그리 좋은 기억이 못 된다. 기억하는 건 아이들이 무작위로 쏘아올린 공들이 난잡하게 하늘을 쏘다니는 장면 뿐. 그랬기에 대학에 테니스 코트가 있는 것을 보고도 테니스를 배워야 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뭘 하기는 해야겠는데 그냥 수영이나 할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전부였다. 그러다 학교의 웰니스센터 테니스 레슨 모집 공지를 보게 되었고 대수롭지 않게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그렇게 테니스 레슨을 시작했다.
내게 운동은 취미생활이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도구였다. 이는 부모님께서 늘상 하시던 말씀이고 어느새 나는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전공 수업 중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모 자격증을 만들어야 해...' 동감이다. 사람의 영향력이란 무시무시하고 부모의 영향력이란 가히 절대적인 수준이다. 그렇게 항상 운동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즐기는 운동이 아니라 배우고 집중하는 운동은 방학기간에만 잠깐 가능할 뿐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오고 일주일 중 나흘을 1:1로 20분씩 테니스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이를 올해로 3년째 계속해나가고 있다. 나는 이 시간 속에서 배움을 넘어,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깨닫게 되고 생각하게 되었다. 몸은 솔직했다. 지금까지 그 어떠한 것도 이토록 솔직하지 않았고 생생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로써 얻어진 지식들은 모두 살아 움직였다. 이는 사람들이 삶의 지혜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놈인 듯 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삶의 모토motto는 '열심히try hard'였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 했다. 공부하는 것도 열심히, 노는 것도 열심히 심지어 낮잠자는 것도 열심히. 이것이 삶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최선을 다함으로써 얻게 되는 결과를 노력에 대한 값진 보상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삶에 대한 태도는 테니스를 할 때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공을 칠 때에도 열심히, 공을 기다릴 때에도 열심히, 테니스를 하는 매순간 열심히 했다. 그러다보니 쉽사리 지치게 되었다. 이는 비단 테니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항상 무엇이든 열심히만 하려 했기에 늘 긴장상태에 놓이게 되고 쉽사리 지치게 되었다. 보상을 통해 회복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 피로와 스트레스는 축적되어갔다. 생각의 전환을 기꺼이 맞이했다. '긴장과 이완tension & relaxtion' 이것이 새로운 삶의 모토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전환에는 성악을 비롯해 다양한 요인들이 얽혀 있다. 하지만 테니스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예전에 남겨둔 글이 있어 가져왔다.
2011.06.02 13:50
테니스장과 수영장의 느낌이 좋다, 둘은 비슷하다
모든 소리는 과녁에 꽂히기보다 여운을 남긴다
고개를 들때면 높은 천장에 시원하다
그런 높은 천장 때문일까 조명들은 눈부시지 않다
넓은 창으로 빛이 들어올 때면 정적인 공간이 만들어진다
온종일 스탠드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 테니스장에서는 반드시 테니스를, 수영장에서는 반드시 수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외부와 차단되어있는 듯하나 투명한 창들에 오히려 시간과 날씨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어쩌면 테니스가 아니라 다른 운동이었다해도 지금과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3년 정도 꾸준히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를 꾸준히 하기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학교의 실내·실외 테니스장, 테니스장에서 만난 사람들, 테니스를 할 당시 나의 상황과 마음상태 등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졌기에 이렇게 3년째 계속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운運을 믿지는 않으나 경우의 수와 확률은 분명 존재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테니스 레슨을 받을 지, 받을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 테니스는 가능한 놓고싶지 않은 끈이 되었고, 앞으로가 굉장히 기대된다. 어떤 운동을 배우면 좋을지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감히 테니스를 추천하고 싶다. 테니스는 매우 깊은 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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