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 지랄 같은 블로그를 부숴 버릴 테다. 혼자만의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며 남긴 글들이 몇 백, 몇 천 개가 될 때까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블로그를 하고는 있지만 이는 고등학생 때의 생존전략으로서의 일기와 비슷할 뿐 결코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 안에서도 여러 양상이 있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상의 감정과 생각 따위를 고백하고 토로하는 공간이다. 여긴 현실과 가상의 중간 어디쯤이다. 이곳에 상주하는 이들은 지도에 나타낼 수 없는 공간에서 현실에 존재하는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그런데 현실과 가상, 여기에 틈은 없다. 그들이 말하는 공간은 애초에 없다. 이것은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것들이 생겨나고 축적된다고 볼 때 이는 풍족해졌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자연발생적인 것은 드물다. 풍족보다는 충족을 위한 것들로 가득하며 이는 결핍에서 시작된 것이다. 색소폰 부는 것이 처음이라 아랫 입술 안쪽이 까져 피가 난다. 색소폰을 연주하면 원래 다 그런 것이라 한다. 기타를 치니 손 끝에 굳은 살이 배긴다. 기타를 치면 원래 다 그렇다고 한다. 테니스를 치면 한번쯤 테니스엘보우에 걸린다고 한다. 발레를 하면 온통 물집 투성이고 발의 형태가 일그러진다고 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처럼 하기 위해 얻게되는 상흔과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흔히 영광의 상처로 떠받들어진다. 그러나 내게는 더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불쌍해보이고 더러 추해보이기도 한다. 이는 곪은 상처이며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인지 비난한다. 왜 그것을 시작했는지, 왜 계속 해야만 했는지 묻고 싶다. 단순히 좋아해서라는 말은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이다.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결핍이 발생했다.
언젠가 이 블로그가 현실에 포섭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익명과 닉네임이 아닌 내 이름을 걸고 블로그를 운영할 것이다. 처음의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들 때와는 상반되는 생각이지만 지금의 판단으로서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더 나은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는 일단 살고봐야하니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나의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현실도 가상도 아닌 자기만의 세계에서 아주 좋다고, 신나게 헤엄치는 이들과는 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피난길에 생필품을 재어 놓고 사람들간 흥정을 붙이는 협작꾼이다. 하마터면 나 역시도 그러한 흥정에 끼어들어 더 높은 가격을 외쳐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아직 많은 부분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그들이 협작꾼이었음은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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