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가지고 놀던 탁구공이 굴러 굴러서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혹은, 거실에서 가지고 놀던 탁구공이 소파 쪽으로 굴러가더니 일순간 사라져버렸다. 전자의 경우는 아마도 소파를 살짝 들어낼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려 버릴지도 모른다. 피아제의 인지발달단계에 따르면 아이는 8~12개월이 되면 숨겨진 장난감을 찾기 위해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즉, 숨겨진 장난감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보이지 않아도 알게 된다. 그런데 나는 20대가 되고서 이에 자주 회의를 품게 되었다. 어쩌면 아주 어렸을 적 보았던 <트루먼 쇼>라는 영화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는데, '계속된다'는 것을 어떻게 그리도 쉽게 믿을 수 있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삶의 커다란 몇가지들, 잠든 순간에도 세상은 계속 되리라는 것, 등지고 서있는 신호등의 불빛 또한 눈앞의 것과 마찬가지로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뀔 것이라는 것, 그와 유사한 많은 것들. 나는 그와 같은 것들을 믿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게임의 법칙을 따르듯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일련의 법칙들을 따르는 것과도 같았다. 아마도 그랬기에 현상은 내게 텅 빈 채로 다가왔다.
거울. 신기하게 생각하는 몇가지를 꼽아보라면 가장 먼저 거울을 댈 것이다. 이는 그저 신기하다. 처음부터 신기했고 익숙해질수록 신기하다. 거울에 깊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유리 전용 세정제로 티끌 없이 닦아내면 그 깊이를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아 간혹 손가락으로 찔러 본 적이 있다. 거울의 원리와 원근법에 관한 과학 도서와 철학자들의 설명을 읽어봤고 꽤 이해도 했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전신거울 옆으로 비스듬히 서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바라보는 거울 속 전경은 근 몇년만에 돌아온 집의 모습처럼 늘 보던 것이지만 낯선 것이다. 거울을 앞에 둔 채 왼손을 올리면 거울 속 자신도 손을 올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거울 속의 손은 오른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돌연 무서워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오른손을 들고 있다. 나는 분명 왼손을 들고 있는데 말이다. 거울 앞으로 펼쳐진 책의 글자들은 빠르진 않지만 문제없이 읽힌다. 분명 바뀐건 좌우인데 오히려 상하가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며, 출판의 신명조체는 이토록 날카로운 것이었고, 'ㄱ'과 'ㅋ'의 모습이 특히 낯설게 다가온다. 이외에 좌우가 대칭이지 않거나 다른 대개의 물건들은 무심히 바라본 거울 속에서 좌우가 바뀌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신축된 건물의 방을 보러다닐 때 맞은편 방들은 대개 좌우만 바뀐 구조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한밤중의 텅 빈 두 방은 분별하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