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따르는데 오늘따라 이상하리만큼 거품이 크게 올라와 카메라를 들었다. 컴퓨터로 옮겨 재생시켜보는데 맥주 거품보다도 뜬금없이 심장 박동하는 게 찍혀있다. 카메라를 가만히 들고있자니 심장박동이 크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심장 뛰는 것이 크게 느껴지는 몇몇 순간들이 떠오른다. 물이 가득찬 욕조에 앉아 몸을 좀 더 아래로 구겨넣어 이마까지 잠기게 할 때면 심장박동 소리가 내것이 아닌듯 멀리서부터 들려온다. TV 시트콤의 심장박동처럼 크게 들려온다. 가슴 왼편에 손을 갖다대어도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이건 감촉을 소리라 착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시절 정규 야자시간이 끝난 뒤에도 남아서 공부를 계속했다. 10시면 야자가 다 끝났고, 전교생들이 모두 빠져나가 교정이 조용해지기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다. 교실에 남아있어봤자 의자 끄는 소리에 정신이 사납기에 바람이나 쐴 겸 운동장으로 나갔다. 운좋게도 다니던 고등학교는 시설이 매우 좋았다. 인조잔디구장과 빨간 트랙은 밤에도 멋진 모습이었다. 워낙 부지가 넓고 주위는 확 트인 곳이었기에 운동장은 달빛만으로도 밝았다. 처음에는 그저 느긋하게 거닐었다. 그러다 얼마뒤부터는 트랙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천천히 달리다 마지막 반 바퀴는 100m 질주를 했다. 그렇게 온힘으로 달리고는 헐떡이며 주저앉아 쉬었다. 가만히 쉬고 있자면 미칠듯이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가슴편에 손을 올리고 달을 바라봤다. 그러자면 바라보고 있는 달도 그에 맞춰 함께 뛰고 함께 흔들렸다. 고교생으로서의 하루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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