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울 수 있습니다)
꿈은 여전히 많이 꾼다. 기록을 멈춘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꿈을 기억하는 능력이 저하되지는 않는다. 오늘은 깨었을 때 두 가지 꿈을 기억헀다. 하나는 좋아했던 사람과 다시 어울려 지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족과 함께 어울려 노는 꿈이었다. 다 좋았는데 마지막이 너무 지저분했다. 끔찍했다는 말보다 더러웠다는 말을 쓰고싶다. 계곡 같은 곳을 뛰다니며 놀다 조금 큰 바위에서 아래로 점프를 했다. 착지하며 땅에 손을 짚었는데 거기에 돌조각이 하나 있었나보다. 왼손 검지 손가락 첫번째 마디에 그게 박혔다. 돌은 제법 굵고 조금 길쭉한 모양이었다. 아주 깊숙이 박혔다. 박힌돌 때문에 벌어진 손가락 마디의 표면은 너무나도 징그러웠다. 젠장할 그것은 줌을 당기듯 확대되서 보였다. 갈색, 붉은색, 검은색, 그리고 흰색의 실 그러한 것들이 뒤엉키고 잘려나간. 처음엔 넋을 놓고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엄마! 엄마!'를 외쳐대는 TV의 어느 광고처럼 '엄마!' 하고 큰 소리로 한 번 외치고 그 돌을 오른손으로 잡고 뽑기 시작했다. 웃긴건 돌의 길이가 손가락의 폭?보다 길다는 것이다. 그렇게 터무니없이 깊게 들어가있는건 아니었지만 다 뽑아내는데 4초 가량이 걸렸다. 뽑혀 나오는 돌에는 당연히 피와 조금의 살점이 묻어나왔다. 아픈것보다 손가락이 니글거리는 느낌이었다. 토할 것 같았다. 그순간 잠에서 깼다. 예전 대못이 박힌 나무 작대기 때문에 손에 상처를 입었을 때의 꿈처럼 감각은 깨어서도 이어졌다. 깨고나서도 왼손 검지를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제발 온전하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만져봤다. 손가락은 여전히 니글거렸다. 그리고 오늘 하루종일 왼손 검지는 니글거렸다. 내일이 되면 더이상 생각나지 않고 느껴지지 않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여담으로 뇌는 정말 병신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대해 경험한다는 것은 참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증이라는 것은 모두 감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그러한 감각적 경험을 하는 실질적인 기관은 뇌이다. 그런데 그 뇌는 꿈과 현실도 구분하지 못한다. 경험한다는 것은 실제성을 담보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만약 그러한 상식마저 포기한다면 사람들은 미쳐버릴 것이다. 인셉션에서 자살했던 여자가 떠오른다. 디카프리오도 만약 그 팽이같은 것이 없었다면 미쳐버렸을 것이다. 팽이는 '진실' 혹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팽이가 없다. 확신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던 것 같은데 미래의 매춘의 개념은 헤드폰과 닮은 것을 쓰고서 실제 섹스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체온, 감촉까지 모두 똑같이 말이다. 꿈을 꿀 때 뇌가 하는 짓을 보고있자니 충분히 가능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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