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편두통에 시달리고 매순간의 호흡들이 무겁고 완벽하게 깨어있지도 완전한 숙면을 취하지도 못하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되는게 없던 때. 혹시나 효과가 있을까 하며 구매했던 아로마 오일들. 다른 누구에게는 고상한 취미일지도 모르겠으나 내게는 아스피린 주사와도 같았던 절실함이 묻어난 것. 신경적으로 어떠한 효과를 느낄 순 없었지만 침대에 누워 향을 들이마쉬고 있자면 그 향에 조금이라도 정신을 빼앗겨 잡생각이 조금은 덜 나고 그래서 머리도 조금은 덜 아팠던 것 같다. 물론 지금에는 많이 다르다. 이제는 기관지를 위한 영양제와도 같은 것. 그리고 조금은 느긋한, 그 일련의 과정을 즐기고 있다.
가장 먼저 물받이에 깨끗한 물을 새로이 채운다. 그런 다음 가스라이터로 양초에 불을 붙이고 물을 데우기 시작한다. 그동안에 방안의 창을 닫고 방문도 닫는다. 잠시뒤 김이 오르기 시작하면 아로마 오일을 두세 방울 정도 떨군다. 방안은 금세 아로마 향이 가득하다. 그렇게 2-30분간 램프를 켜둔다. 뒤통수에 깍지를 끼고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깊게 들이마쉬는 느낌이 난다. 너무 평안한 나머지 잠들기 일쑤이므로 꼭 알람을 맞춰둬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알람이 울리면 양초만 빼내어 화장실에서 불어 꺼뜨린다. 불 꺼진 램프의 잔향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몸을 추스르고 새로이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간 감각을 되찾기 힘들다. 타들어가며 흔들리는 불꽃과 퍼져나가는 향기에 방안의 시간은 꽤 느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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