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시대 어느 왕때의 얘기다. 당시의 왕도였던 서라벌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어느 한 고을에 허수라는 청년이 늙은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허수는 소작농의 자식이었고 당장의 끼니조차 잇기 힘들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허수는 남의 집 품팔이를 해가며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허수의 아버지는 작은 새를 무척 좋아하였는데, 그래서 이따금 곡식을 한 줌씩 꺼내어 마당에 뿌리고는 새들이 날아와 먹게 하였다. 허수와 그의 어머니에게는 마냥 달갑지 만은 않은 행동이었지만 그건 허수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었다. 허수는 무리를 해가며 고된 일을 계속했고 날이 갈수록 야위고 쇠약해졌으나 부모에게는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하루였다. 여느 때처럼 허수는 품팔이를 하러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날따라 밤 늦도록 허수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허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가 걱정되어 대문 밖으로 나와 허수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저기 멀리서 마을 사람 서넛이 거적데기로 둘러 싼 것을 들러메고 허수의 집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었다. 집앞에 다다른 그들이 내려놓는 것은 차가운 허수의 시신이었다. 함께 온 사람들은 허수가 이웃 마을 대감 댁에 품팔이 하러 갔다 고약한 주인에게 심하게 매를 맞는 바람에 허수가 끝내 죽고야 말았다는 기가 막힌 말을 전한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고 허수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오열을 했다.
다음날부터 허수의 아버지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매일같이 드나들던 새들이 마당을 찾아와도 곡식을 주지 않았으며 '훠이 훠이' 소리를 지르며 내쫓아버렸다. 허수의 아버지는 매일같이 들녘으로 나가 아들의 이름을 큰 소리를 외치며 울어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허수의 아버지는 얼이 나간 사람처럼 계속해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울어대고를 반복했고 그탓에 몸이 점점 굳어오더니 끝내는 팔을 벌리고 선 채로 죽어 버렸다. 사람들은 그런 허수의 아비를 보며 참으로 안타깝고 비통해 했다. 그 후로 봄이 저물 무렵이나 가을에 벼가 여물 때에 허수 아버지의 모습을 딴 '허수아비'라는 짚으로 만든 인형을 세워서 참새를 쫓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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