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살해당했다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어떤 여인에 관한 발라드.
건전한 의도로 씌어졌고,
한 자 한 자 종이 위에 정성껏 기록되었다.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 창가에서,
혹은 희미한 등불 아래서, 그 일은 벌어졌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문이 굳게 닫히고,
살인자가 계단을 막 뛰어 내려가는 순간,
그녀는 뜬금없는 적막에 놀라 깨어난 생명체처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마치 반지에서 빠져나온 보석처럼
견고하고, 단단한 시선으로 찬찬히 구석구석을 살핀다.
허공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마룻바닥 위를,
삐걱대는 판자 위를, 침착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다.
범행 후에 남겨진 모든 흔적들을
아궁이에 넣고, 활활 태운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서랍 밑바닥에 들어 있던 구두끈까지 모조리.
그녀는 목을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총에 맞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 그녀를 잠시 엄습했을 뿐.
그녀는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사소한 일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심지어는 쥐를 보고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모방하고 가장할 수 있는,
우습고도 하찮은 일들은
이렇게나 많다.
다들 일어나기에 그녀도 일어난 것이다.
다들 걸어다니기에 그녀도 걷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는 머리카락을 빗질하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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