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면 지치기 전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집어던진 옷가지들과 가방들, 프린트들이 너저분했다. 야식을 먹고 내던진 식기들과 냄비들 또한 어질러져 지저분했다. 청소를 하고 싶었고 가구들의 위치도 옮겨보고 싶었다. 같은 모습의 공간에 오래토록 머무는 것은 힘들었다.
그리고 감기에 걸렸다. 감기 기운이 있었던 적은 많지만 늘상 거기서 끝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목이 붓기 시작하더니 다음날 제대로 감기에 걸렸다. 모든 것이 올스톱되었다. 목이 많이 불편했고 콧물과 두통 또한 있었다. 그래도 지치지 않은 집은 오랜만이었다. 몸은 아팠지만 미뤄둔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싶었다.
몇 달 전부터 부산 집으로 부치려 했던 조리도구들을 포장했고 일부 옷장 문을 뜯어내고 커튼을 쳤다. 침대의 위치를 옮겼고 몇 개의 붙박이장 정리를 다시 했다. 20리터 쓰레기 봉투 3개가 가득찼다. 버리지 못했던 신발들도 끈만을 풀어낸 채 과감히 버렸고 유통기한이 지난 호두, 캐슈넛, 피스타치오들도 버려주었다.
글도 더 많이 쓰고 싶다. 풍경도 더 보고 싶고 천천히 사진도 찍고 싶다. 10월은 항상 바빴다. 그래서 10월의 풍경이 가장 보고 싶다. 정말 지치는 때가 오면 다 내려두고 잠깐 쉬려고 했는데 지금이 그때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럴때마다 1학년 2학기가 떠오르고 그때보다 괜찮잖아 하며 또 쉼 없이 가곤 했다. 아마도 나는 그때에 조금이라도 쉬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