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도 아니며 어디 영화속 혹은 소설속 주인공의 이름도 아니며 동식물의 이름도 아니며 어쩌면 '이름'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줄곧 필명을 바꾸고 싶었고 발음했을 때에 바람이 통하는, 혹은 바람이 지나는 필명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떠오른 글자들의 조합이다. 먼저 떠오른건 '수하'. 개인적으로 단어의 끝에 'ㅎ' 발음이 오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히읗' 이 아닌 독어의 'ch[x]' 의 발음을 좋아한다. 이는 목을 긁는 담배연기와 같은 여운이 있다. 사라진다는건 끝을 의미하지만 그 끝을 볼 수 없고 정말 끝난 것인지 알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기에 '끝' 보단 '사라짐' 을 마지막에 두고 싶다. 'ㅡ' 을 더한 '흐' 가 ch[x]의 발음에 더욱 가깝겠지만 사람의 이름을 닮은 필명을 만들고 싶어 'ㅏ' 를 더했다. 다음으로는 흐르는 느낌을 더하고 싶었다. 水 가 떠오른건 아니고 '수' 를 길게 발음했을 때의 그 시간. 그 발음하는 시간 그 자체가 흐르는 시간을 느끼게 했다. '솨-' 의 이미지가 떠오른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유' 를 앞에다 세운건 글자들을 합쳤을 때에 중성에 가깝게 만들기 위함이다. 발음하기 나름이지만, 한글 발음으로 '수하' 는 굉장히 여린 느낌이다. 물론 사극의 전장터에 등장하는 수하手下를 떠올리면 딱딱하기 그지없지만 이름으로서의 '수하' 는 꽤 여리다. 남성형, 여성형 명사로 분류한다면 여성형 명사에 속할 것이다. 글쎄, 나는 '유' 라는 글자를 생각하면 원(circle) 이 떠오른다. 원은 내게 순환, 그리고 아주 조금 남성성?에 치우친 중성의 이미지를 가져다준다. 그렇기에 세 글자를 합쳐 'ㅇㅅㅎ' 라는 필명을 만들어냈다. 시각·구조적으로도 마음에 든다. '수' 는 좌우가 대칭을 이룬다. '유' 와 '하' 는 그래도 꽤 비슷해보이는데, 더 오래들여다보면 사실 매우 유사한 형상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꽤 안정적인 형태를 이룬다.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보면 둥둥 뜬 이응과 시옷이 버스에 붙어있는 우송대학의 로고를 떠올리게 하고 그 아래 축 늘어진 모음들은 오징어 다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럼에도 다행히 'ㅇㅅㅎ다' 라는 파생어 덕에 그 격조를 잃지 않고 있다. 아무튼 꽤 만족스럽다. 당분간은 이 필명을 쓸 듯 하다. 한 가지 고민되는건 도메인 주소와 레이아웃의 글자 이미지다. 이제껏 써오던 nomad*ry 도메인과 이미지를 usoo*a로 바꿔야할지. 혹 바꾼다면 지금의 블로그 색감 자체를 바꿔야만 어울릴 것 같아 고민이다. 확언하건데 그건 '매우' 귀찮은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