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창과 물웅덩이에 반영된 사진들이 많았다. 지난번 읽은 <아디안텀 블루>의 영향일지도, 아니면 단순히 간만에 고일 정도의 비가 내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시작은 허무였다. 오전 9시에 여는 브런치 가게를 수소문해 찾아갔건만 힘없이 가게의 불은 꺼져 있었다. 그 허무함 때문일까, 오전엔 잘 하지도 않던 폰을 만지작 거리며 소일거리처럼 배경화면을 이것저것 바꿔보거나 어플 정리를 해보거나 그런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2주만에 레슨을 갔다. 사실 레슨 전 학교에 들러 목을 풀 때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웬걸 레슨에서는 너무도 부족함이 드러났다. 노래는 고사하고 발성만 40분 가량 이어졌다. 호흡을 컨트롤 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늘상 스스로도 느껴왔지만 오늘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심했다. 의경 복무를 마치는 날까지 포기 않고 버틸 수 있을까 하는 한숨이 나왔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또다시 밀려왔다. 헛헛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하루를 이어 가기 위해선 아침부터 이어진 공허를 메워야만 했다. 교보문고로 내달려 대산세계문학총서를 죄다 뒤졌다. 간청하듯 뒷표지들을 탐독했다. 그러나 끌리는 책은 없었다. 나는 더욱 빈 채로 걸어나왔다. 배라도 채우면 나아질까 싶었다. 푸드코트의 음식 모형들 중 가장 탐욕스러운 비주얼을 골랐다. 내가 좋아하는 카레와 오므라이스와 함박스테이크가 한데 올려 있었다. 다행히 맛이 괜찮았다. 다음 일주일을 버텨낼 수 있을까 염려하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버텨내고 끝까지 남는 자가 승자라는 말이 떠올랐다. 솔직히, 오늘은 자신하지 못한 채 글을 마쳐야할 것 같다.